‘논쟁적인’ 서비스 다음 아고라가 15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카카오는 2019년 1월7일 아고라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3일 밝혔다. 아고라는 토론과 청원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다. 카카오는 “이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 공간이 많아졌고, 15년의 소임을 다했다고 판단해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고라는 1990년대 나우누리의 진보통신모임 ‘찬우물’과 같은 커뮤니티를 발전시킨 형태이자 오늘날 청와대 청원사이트의 원조격으로 온라인을 통한 민주주의 실험 무대였다. 지난 15년 동안 아고라에 올라온 글은 3000만건, 청원은 20여만건에 달한다.

▲ 다음 아고라 서비스 종료 안내 화면.
▲ 다음 아고라 서비스 종료 안내 화면.

광장이 된 아고라

다음 아고라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때 주목을 받았다. 누리꾼들은 아고라에서 토론하면서 정부의 수입 조치, 과잉 진압에 문제를 제기했고 거리에 나섰다. 당시 아고라 일일 방문자 수는 140만명을 넘어섰으며 ‘토론의 성지 아고라’라는 문구의 깃발은 촛불집회의 상징이 됐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 2009년 쓴 석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쇠고기 협상 타결 이전에는 아고라에 하루 평균 4177건의 글이 올라왔지만 타결 이후 2만466건으로 6배 가량 늘었다. 댓글 수도 이 때를 기점으로 2만1976개에서 12만7105개로 급증했다. 아고라 토론방에 개설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 서명에는 130만명이 참여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아고라 현상에 주목하며 “2002년 미선·효순양 사건이나 2004년 탄핵사태 때 형성된 사이버 공론의 장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소위 ‘논객’들이 특정 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여론이 만들어졌지만 개방된 공간인 아고라에는 10대 청소년, 30대 아줌마, 해외교포 등 다양한 계층이 자유롭게 참여했다는 분석이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언론의 중요성을 느낀 아고리언(아고라에서 활동하는 누리꾼)들은 ‘언론운동’을 이어나갔다. 2008년 감사원이 정연주 KBS 사장 특별감사에 착수하자 아고리언들은 밤마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명박 방송장악 꿈 깨라’ ‘정연주 사장 법정임기 보장하라’ ‘국민의 방송 KBS는 국민이 지킵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구본홍 YTN 신임사장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때는 주총장 앞에 서서 낙하산 사장 반대 구호를 외쳤다.

▲ 다음 아고라 토론방 네티즌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08년 6월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 특별감사 반대와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며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 다음 아고라 토론방 네티즌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08년 6월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 특별감사 반대와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며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아고리언들은 조중동 보도에 항의하며 광고주 ‘불매운동’도 벌였다. 이는 2008년 7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포털 다음에 뉴스 공급을 중단하는 계기가 된다. 조선일보는 2008년 7월7일 1면을 통해 뉴스 공급 중단이 “다음이 자사 사이트를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사와 광고를 낸 기업들에 대한 영업방해 등 불법행위 공간으로 제공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방치한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아고라 장악하려 한 보수정권

임기 초반 직격탄을 맞은 이명박 정권은 집권 내내 아고라를 주시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2009년 5월 다음 ‘아고라 대응 외곽팀’ 9개를 만들고 이후 24개 팀까지 확대했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정부를 옹호하는 여론조작을 했다. 군 사이버사령부는 2010년 민간인 사찰 사건이 드러난 직후 아고라의 반응을 체크하고 “향후 VIP·정부·군 비난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아고라에 대한 과잉대응은 ‘미네르바 사건’ 때 절정에 달했다. 2008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누리꾼이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대한민국 경제 추이를 예측해 화제를 모았다. 경찰은 전기통신기본법상 위반 행위인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한 허위통신’을 이유로 그를 구속했으나 해당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무리수’로 역사에 남았다.

▲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다음 아고라 누리꾼들이 행진하고 있다.
▲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다음 아고라 누리꾼들이 행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아고라를 주시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회의수첩에는 청와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부정적인 게시물에 대한 대응방안을 고심한 흔적들이 나온다. 2014년 8월 “다음 아고라: 음란성 패러디 삭제- 검색어 조치” “‘다음 아고라- 방심위 통신분야 인적구성’” 등이 거론된다. 이후 청와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동향 파악 문건을 작성하고 명예훼손 게시글을 제3자 신고 없이 삭제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정치권의 압박은 규제에 취약한 IT기업 다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2009년 이후 다음의 블로거 뉴스와 아고라 서비스는 점점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졌고 투자도 줄었다. 카카오의 설명처럼 경쟁서비스가 많아져서 도태됐다고만 보기 힘든 이유다. 2010년 다음은 행정수도 이전 논란 때 정부의 홍보성 게시글을 중점 배치해 논란이 일었다. 이때 다음은 “사회현안에 대한 합리적인 여론광장이 되겠다”면서 “균형 잡힌 편집”을 강조했다.

온라인 민주주의 기여, 발전 못한 채 쇠락

아고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조선일보는 아고라 폐쇄 소식을 다루며 “좌파 세력들의 토론장으로 변질돼 버렸다”라고 지적한 반면 한겨레는“‘제2의 명동성당’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 아고라 청원 화면 갈무리.
▲ 아고라 청원 화면 갈무리.

오세욱 연구위원은 “온라인에서 공론장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자정작용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고라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초기에는 일방적인 촛불 옹호글만 관심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냉정하게 바라보고 의견을 개진하는 글도 관심을 받았다”며 “그 수는 적었지만, 일방적인 목소리만 담아내고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아고라의 역사가 언론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아고라는 준전문가들을 부상시키는 등 인터넷 논객의 산실로 자리잡으며 기성언론이 선별한 필자의 엄숙주의와 대비되었고, 댓글과 같은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장치들이 흐지부지된 전통매체와 달리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추천에 의해 쟁점화하는 사용자 참여형 모델로 주목받았다”고 평가했다.

최진순 기자는 “아고라의 퇴장은 산업적, 사회적, 문화적, 변동의 결과이지만 참여자간 대등성 및 상호성, 공동체 진로를 탐색하는 책무성 등 아고라 정신은 오래도록 네트워크 문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용자의 익명성, 추천 조작 등 공론장 시스템의 비능률성, 제기하는 의견 및 정보의 허위성 등 논란 역시 복기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아고라 개발자 출신인 권오현 슬로워크 대표는 “당시 다음이 아고라, 블로거 뉴스 등 미디어 사업을 적극적으로 했다. 아고라를 통해 토론, 숙의, 공론이 이뤄지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었지만 정치상황 탓에 1단계에서 멈춰버렸다고 본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권오현 대표는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아닌 제3의 모델이 나와야 한다”며 “포털의 온라인 기술을 활용해 신뢰를 높이고 협력은 더하는 기술이 정체된 반면 인공지능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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