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 ‘퀸’(QUEEN) 덕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MBC가 2일 영국 록 밴드 ‘퀸’의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실황 방송에 이어 10일 ‘MBC 스페셜’을 통해 ‘내 심장을 할퀸(QUEEN)’ 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낸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관련 예고편 및 홍보 이미지 공유와 함께 ‘MBC에 퀸 덕후(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줄임말)가 있는 게 분명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MBC를 응원한다’는 누리꾼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퀸’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관객 수는 2일 현재 575만을 넘어섰으며 600만을 돌파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QUEEN)’은 약 일주일 전 조준묵 MBC 시사교양2부장 제안으로 기획됐다. 조준묵 부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금 ‘퀸’ 열풍이 불고 있는데 우리는 왜 감동을 느끼는지 시청자들과 함께 감동을 공유하자는 취지”라며 “연말이고 다들 힘든 상황인데 소리라도 함께 질러보자는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내 심장을 할퀸(QUEEN)’이라는 제목은 한 조연출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연출을 총괄하고 있는 이영백 MBC PD는 “회의를 하는 동안 고루한 제목들만 머리에 맴돌고 있던 와중에 조연출 한 명이 농담처럼 던진 제목이었다”며 “프로그램 기획 자체가 열풍을 무겁게 분석하기보다 사람들이 퀸에 열광하는 현상을 직관적으로 보자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제목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 MBC는 오는 10일 'MBC 스페셜-내 심장을 할퀸(QUEEN)'을 방영한다. 사진=MBC 스페셜 예고편 갈무리
▲ MBC는 오는 10일 'MBC 스페셜-내 심장을 할퀸(QUEEN)'을 방영한다. 사진=MBC 스페셜 예고편 갈무리

MBC 스페셜 제작진이 처음 퀸 관련 아이템을 기획할 때는 ‘영화가 뜨니까 묻어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여러 매체와 사람들이 퀸에 대한 각종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도 있었다는 것. 그러나 실제 취재를 시작하고 퀸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확신이 생겼다.

제작진이 170명을 대상으로 마련한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 상영관’(관객이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상영관) 무료관람 이벤트는 공지를 올린 뒤 약 2시간 만에 만석이 됐다. 스페셜 제작 소식이 알려진 뒤 제작진에게 ‘자리 좀 남는 것 없느냐’고 물어오는 MBC PD들이 있었지만 전석이 매진돼 단 한 명에게도 자리가 돌아가지 못했다.

이영백 PD는 선천적인 시각 장애를 겪고 있는 19세 학생을 만났다. 이 PD는 “평소에 영화를 잘 볼 수 없어서 액션 영화처럼 소리가 잘 들리는 영화들만 종종 봤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는 감동을 받아서 6번을 봤다고 한다. 퀸의 ‘돈 스탑 미 나우(Don’t Stop Me Now)’를 들으면 우주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즐거움을 맛봤다고 하더라”며 “영화 하나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취재를 하며 느꼈다”고 전했다.

▲ 2일 방영되는 MBC '지상 최대의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예고편. 사진=MBC 제공
▲ 2일 방영되는 MBC '지상 최대의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예고. 사진=MBC 제공

민족, 종교, 성적 정체성 모두 소수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이야기도 조명한다. 퀸을 ‘부적응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부적응자들’이라 칭했던 프레디 머큐리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으며 오히려 통합을 노래했다. 국내 연예인 가운데 처음 본인이 게이임을 스스로 알린 방송인 홍석천씨가 퀸의 음악으로 위안을 받은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출연해 프레디 머큐리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퀸이라는 밴드가 결성되고 퀸의 음악이 만들어진 영국 현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해외 촬영 경험이 풍부한 박정남 독립PD가 제작진으로 합류해 영국 현지를 취재했다. 영국에서는 퀸이 작업했던 녹음실, 함께 곡을 작업한 기술자의 이야기,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던 집의 모습을 통해 퀸의 자취를 살펴본다. 런던 현지에 만들어진 ‘보헤미안 랩소디 거리’의 모습도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

이 PD는 시청자들이 이번 다큐를 열린 마음으로 편안하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프레디 머큐리는 여러 제약이 있는 조건에 처해 있었지만 사회와 문화가 이를 받아들이고 음악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며 “아직도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것과 내 편을 나누는 인식이 많은데 이런 마음들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일 방영되는 MBC '지상 최대의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예고편. 사진=MBC 제공
▲ 2일 방영되는 MBC '지상 최대의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예고. 사진=MBC 제공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은 공교롭게도 ‘라이브 에이드’ 공연 방송과 일주일 간격으로 방영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마지막 장면으로 등장하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는 에티오피아 난민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마련된 공연으로 퀸 뿐 아니라 폴 매카트니, 데이빗 보위, 에릭 클랩튼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동참했다. 당시 3시간 동안 이를 중계했던 MBC는 영상 원본의 화질을 보정해 배철수, 임진모 평론가 해설과 함께 전한다.

조준묵 부장은 라이브 에이드 방송과 MBC 스페셜 기획이 한 번에 논의된 사안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 부장은 “우리 주장은 ‘우리가 기획이 더 빨랐다’는 것(웃음)”이라며 “제작진이 제작을 해보자고 모여서 논의한 뒤 이틀 뒤쯤 라이브 에이드 편성이 결정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급히 기획된 만큼 제작 기간은 보통 3개월 안팎인 스페셜 제작 기간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대신 6명 안팎인 기존 제작진의 2배 수준으로 제작인원이 보강됐다. 조 부장은 시의성 있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 여러 명이 모여들어 협업하는 게 원래 MBC 시사교양국 전통이었다고 설명하며 “MBC가 그동안 이런 작업 방식을 많이 잊었다. 부장부터 PD까지 단합이 돼야 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과거 MBC로 돌아왔다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은 오는 10일 오후 11시10분 방송된다. 2일 오후 11시55분엔 ‘지상 최대의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가 100분 동안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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