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26일 출범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창립선언문의 한 대목이다. “전국 41개 언론노조의 1만3천여 언론노동자들은 언론민주화가 사회전체의 민주화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깊이 자각하면서….” 2000년 산별노조로 전환한 전국언론노조 조합원은 현재 1만3853명이다. 산별 아래 지·본부는 131개 조직으로 확장됐지만 조합원의 볼륨은 30년 전 그대로다.

다시 창립선언문의 한 대목이다. “지난 60, 70년대 언론인들에 의해 시작됐던 자유언론실천운동은 이제 모든 언론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언론노동운동으로 그 폭이 넓어졌으며….” 돌이켜보자. 그 때는 조선일보도, 동아일보도 언론노련 소속이었다. 하지만 2000년 언론노조 산별전환 과정에서 소위 ‘조중동’은 이탈했고 안티조선운동과 안티조중동 흐름 속에 언론의 정파성은 강화됐다.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전쟁에 나섰다.

그렇게 ‘모든 언론종사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운동이 이어졌다. ‘태생부터 불공정한 조중동과 종편 소속 기자’들이 지상파로 이직하면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는 조합원이 되는 아이러니도 반복됐다.

지금 언론노조에는 JTBC지부가 없다. JTBC는 2015년부터 4년 연속 각종 평가에서 신뢰도·영향력 1위를 질주하고 있다. MBC·KBS와 비교할 수 없는 격차다. 그러나 언론노조는 신뢰도·영향력 1위 방송사가 없는 언론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언론 산업 종사자 수는 6만193명이다. 정규직 종사자는 4만7111명으로 전체의 78.3%로 나타났다. 오늘날 언론노조의 조직률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 1988년 11월26일 언론노련 창립대회. 권영길 초대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 1988년 11월26일 언론노련 창립대회. 권영길 초대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언론노조는 MBC·KBS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미디어운동을 전개해왔다. 30년 전에도 그랬다. 그 때는 당연했다. 방송사가 MBC와 KBS 뿐이었다. 케이블채널도, 포털사이트도, 유튜브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MBC·KBS는 수많은 플랫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공영방송의 신뢰도와 영향력이 하락한 만큼 기존 언론노조운동의 역량과 운동의 공감대 또한 축소됐다.

더욱이 오늘날 언론노동자의 상당수는 노조가입이 어려운 비정규직이다. 언론노조의 위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위기는 과거부터 감지되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2013년 초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송사 같은 경우엔 이미 작업체계나 노동방식이 신자유주의 질서로 재편되어 있어요. 작가, FD, AD, 편집기사, 운전 등등 다 비정규직이고 모든 작업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방식이죠. 게다가 50%는 외주 하청 제작이에요. 그런 구조 속에서 익숙해진 채 일하다가 막상 파업을 해보니 내가 하던 일을 간부들이 와서 때우거나 대체 인력이 투입되는데 이게 큰 차이 없이 꾸려가요. 그때 비로소 내가 비정규직 문제에 얼마나 무감각해진 상태인가, 내가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구나 깨닫는 거죠.”

다시 창립선언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최초의 언론노동운동의 단초가 우리들의 자발적 노력보다는 외부의 도움에 의해 주어졌다는 점을 마음속 깊이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줄기찬 투쟁을 통해 보도 및 논평의 의사결정과정을 민주화할 것을 다짐한다.” 1988년 언론노련은 1987년 체제의 결과물이었다. 30년이 흘러 대통령을 탄핵시킨 2017년, 촛불혁명을 이끈 한국사회 앞에 놓인 언론운동의 과제는 무엇일까.

▲ 2017년 1월 촛불집회 당시 한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 2017년 1월 촛불집회 당시 한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언론운동 1기, 2기 그리고 3기

미디어플랫폼은 네이버로,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구글과 유튜브로 이동하고 있다. GAFA가 점점 전 세계의 미디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언론운동구호의 중심은 30년 전 그대로다. 미디어수용자들은 공영방송 독립을 더 이상 주요한 미디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같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30년간 언론운동을 1기~3기로 나눠 볼 필요가 있다.

언론운동 1기는 1988년부터 1997년으로, 정규직 중심의 아날로그 운동기다. 이 시기는 1992년 MBC파업 당시 손석희 MBC조합원이 수의를 입고 웃는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언론노련은 1988년을 언론해방투쟁 원년으로 선포하고 실천목표를 “권력과 자본, 자기비리로부터의 해방”으로 정했다. 촌지와 기자실 문제처럼 “자기 비리로부터의 해방”을 논의했으며, 언론노보와 미디어오늘을 통해 언론의 자정을 촉구했다. 이 시기엔 언론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강화되는 가운데 언론운동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출발했다.

▲ 1993년 언론노보의 한 대목.
▲ 1993년 언론노보의 한 대목.
언론운동 2기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로, IMF금융위기 이후 방송사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온라인뉴스서비스가 시작된 가운데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 신문·방송이 플랫폼 주도권을 빼앗긴 시기다. 당시 언론운동진영은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가 성장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의 언론자유를 경험하며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켰다. 이런 가운데 언론운동진영은 산별노조로 재편되었고, 이 과정에서 조중동 등 보수신문과 결별했다. 거의 동시에 ‘조중동’ 프레임이 형성되며 언론운동은 특정 언론사를 ‘공공의 적’으로 설정하게 된다.

언론운동 3기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로,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의 언론자유 후퇴에 맞선 생존 투쟁이 이어진 시기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직후 신문방송 겸영을 밀어붙였고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방송장악에 나섰다. 2009년 1월 IPTV가 등장하며 인터넷TV와 VOD의 시대가 시작됐고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4사가 개국했으며 CJ의 적극적 투자로 tvN을 중심으로 한 케이블채널이 급성장했다.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플랫폼의 공세 가 이어졌다. 언론노조의 중심이었던 지상파의 지위는 급격히 하락했다.

그 분기점은 2012년이다. △낙하산 사장 퇴출 △해직언론인 복직 △공정방송 쟁취를 위해 방송사상 최초의 공동파업투쟁이 벌어졌다. 2012년은 종편이 출범해 본격적인 편성에 나선 첫 해였으며 KBS에서 95일, MBC에선 170일이란 유례없는 장기파업이 벌어진 해였으며 한국이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가 된 첫 해였다. 2012년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이 패배로 끝나며 언론판은 뒤집혔다. 2013년 JTBC가 공영방송의 상징이었던 손석희씨를 영입하며 판은 더욱 흔들렸다.

▲ 2012년 MBC의 170일 파업 당시 모습. ⓒ연합뉴스
▲ 2012년 MBC의 170일 파업 당시 모습. ⓒ연합뉴스
언론노조는 2013년 펴낸 ‘2012활동보고’ 문건에서 “사상초유의 노동자 연대로 자랑스런 투쟁을 만들어냈다”고 밝히면서도 “대선국면에 대한 안이한 정세인식 가운데 우리의 실천은 그저 과거의 양태들을 답습하기에 급급했다”고 평가했다. 언론노조는 “절반에 달하는 콘텐츠를 공급하는 외주제작사들의 존재, 작가·FD 등 다수의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작업체계, 여러 부문에 대한 조직화와 공조체제 구축이라는 해묵은 조직적 과제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자회견, 시위, 성명서 위주 활동은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반성과 해법은 정확했다.

언론운동 4기의 과제

2018년 언론운동진영은 언론운동 4기를 맞았다. 모두가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쳐다보는 시대 앞에서 언론운동은 무얼 하고 있나. 정권교체 이후 언론운동진영의 바람대로 공영언론사 경영진이 전원 교체됐다. 언론운동은 이제 뭘 해야 하나. 언론노조는 미디어지형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기성언론이 생존을 위해 모바일 전략을 짜내는 것처럼. 그러나 여전히 언론운동의 의제는 언론운동 1기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

언론운동진영이 정부의 언론장악에 맞서는 가운데 언론사 내 불안정노동은 증가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착취가 일상화됐다. 정규직 ‘관리자’에 대한 이질감과 비판의식은 점점 커졌다. 2017년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에선 2012년과 달리 ‘시민’들을 찾기 어려웠다. “공영방송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가 컸고, ‘언론사 인턴’을 경험한 젊은 층의 경우 지상파 정규직 노조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언론노조위원장은 “앞으로 언론운동은 어떤 미디어 질서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언론노동에 대한 정의도 다시 내려야 하는 순간”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와 정규직노조 중심의 언론운동은 결국 언론운동진영의 연명을 위한 운동에 그칠 수 있다”며 “2017년 촛불혁명 이후 국면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이 어떠한 미디어를 바라고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언론운동진영은 ‘시혜적’ 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해선 안 된다. 이대로는 운동이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적 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와 관련 공영방송의 한 PD는 “외주제작사를 언론운동의 한 진영으로 포괄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언론노조는 과도한 슬로건을 금지해야 한다. 언론노동자의 수준에 비해 턱없이 높은 슬로건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론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더 큰 대오를 형성해야 한다. 공영방송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공영방송 이슈를 다루는 것 이상으로 다른 미디어 이슈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상황들이 존재하고 있어서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23일 언론노조 30주년 기념식에서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이 “비정규직·프리랜서란 이름으로 노동자로서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앞으로 언론노조가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긍정적이다.

현 국면에서 언론운동진영에 희망적인 대목은 역설적으로 문재인정부와 지상파 경영진이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노조 30주년 축전에서 “지난 30년 언론노조는 언론 가치를 지키고 사명을 다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공영방송 경영진의 경우 지난 정부에서 공정방송투쟁에 나섰던 이들이 많아 노조에 대한 이해도가 과거 인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 지상파4사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3일 오후 1시30분 MBC대회의실에서 지상파방송 산별협약 조인식을 가졌다. ⓒ언론노조
▲ 지상파4사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 9월3일 MBC대회의실에서 지상파방송 산별협약 조인식을 가졌다. ⓒ언론노조
앞서 언론노조는 KBS·MBC·SBS·EBS 등 지상파4사와 지난 9월3일 역사적인 첫 산별협약을 맺었다. 산별협약은 언론노조가 2000년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18년 만의 첫걸음이었다. 지상파-언론노조는 ‘공정방송’ 장치 명문화에 합의하며 2019년 7월1일 시행되는 주당 최대 52시간 노동을 앞두고 제작환경 개선방안에도 큰 틀의 합의를 봤다.

합의 당시 최승호 MBC사장은 “노동시간 단축이나 제작환경 개선의 경우 경영진이 재정적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지만 공적 책무를 지닌 공영방송으로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모습은 자연스럽게 다른 언론사 경영진의 전향적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사 노조가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경영에 참여하며 구조를 바꿔낼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이제 언론운동진영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논의를 주도하며 더 많은 조합원을 확보해야 한다. 30년 전 창립선언문에 담긴 구호처럼 “모든 언론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언론노동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노조의 구호는 다양해져야 한다.

언론사 내에서의 성차별과 젠더감수성 문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이야기해야하고 장시간 노동에 대해 이야기해야하며 저널리즘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한편 직업윤리 강화를 통해 언론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운동 또한 전개해나가야 한다. 예컨대 언론인의 광고·협찬 영업을 금지하는 운동을 주도한다면 非언론노조 소속 기자들에게도 높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언론노조 활동가들의 처우개선과 인력 확대, 역량 강화는 필수다. 

언론노동자들은 언론노조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참여해야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노조는 여전히 언론노동자들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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