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탈원전 조항 폐기 국민 투표 결과가 나오자 원자력공학 등을 전공하는 교수단체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이 비윤리적이라며 우리도 국민의사를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동참한 교수들의 명단 공개는 하지 않는다고 밝혀 의문을 낳고 있다.

이 단체의 대표는 교수들이 정부 정책 비판을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고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의 중요정책 결정과정을 비판하면서 전문가로서 자신의 이름도 공개못하는 이들의 주장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공동대표 이덕환‧에교협)는 회원 일동 명의로 지난 26일 저녁 ‘타이완의 탈원전 폐지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대만 투표결과를 들어 한국 정부의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을 두고 “국회 논의를 통한 입법화는 물론이고 국민의 의사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어떠한 절차도 없이 극단적이고 무책임한 환경단체의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만 반영되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에너지의 정책의 제반 관점(경제성·환경성·안전성·안보성·윤리성)과 우리나라의 기술력 및 여건을 모두 고려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탈원전 기조에 대해 공식적으로 국민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하여 시정하며 △에너지 정책에도 국민주권이 요구하는 법치를 실현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펴면서도 에교협에 속한 교수 명단을 요구하자 거부했다. 이덕환 에교협 공동대표는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굉장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교수들 중에 공개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다. 전문가라고 이름을 밝히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교수가 많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덕환 공동대표는 서강대 화학과 교수이며, 에교협의 공동대표는 이 교수를 포함해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함께 맡고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에교협 회원은 27일 현재까지 회원(교수)이 모두 58개 대학교의 218명의 교수이다.

이 대표는 “전문가들이 그렇게 느껴서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지만 의사표현은 하고 싶은 교수는 있다. ‘이름을 공개하지는 않겠지만 전문가로서 당신 의견에 동조하고 싶다’고 한 교수들을 회원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하고 활동하고 있다”며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교수 명단을 공개하지 않지만 숫자와 구성은 원하면 알려주겠다는 전제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왜 그렇게 망설이느냐’, ‘그럴 거면 입닥치고 떠들지 말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 김학노(가운데)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한국원자력학회-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이덕환 대표·왼쪽) 기자회견에서 2018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김학노(가운데)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한국원자력학회-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이덕환 대표·왼쪽) 기자회견에서 2018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차대한 정부정책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일수록 전문가의 이름을 밝혀야 국민들이 전문가인지 아닌지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 대표는 “실명공개를 하고 활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을 두고 이 대표는 “우리는 탈원전 정책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대선공약 이후 어떤 법적 절차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을 비판하는 것”일라며 “탈핵과 탈원자력이라는 말도 구분못하는 어설픈 대선공약에 기대어 국회에서 어떤 법도 만들지 않고,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의결도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비겁하다” “기회주의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스템공학부 교수는 27일 오후 “자신의 이름도 비공개한다는 것은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고, 책임을 안지겠다는 것으로 이런 이들의 성명은 의미없는 선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면서 정작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얘기는 왜 안하느냐”며 “그런 본질적인 논의도 하지 않고 주장하는 이들의 성명은 철없는 교수들의 철부지같은 얘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름도 안내고, 비겁하게 숨어서 댓글다는 일반 누리꾼들과 뭐가 다르냐”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국민의견을 묻는 절차를 요구한 이들의 성명을 두고 “그럼 30~40개 지을 때는 국민과 합의하고 지었나. 합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없앨 때만 합의하자고 하느냐.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도 이날 “떳떳하면 직접 얘기해야 한다. 교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숨긴다는 것은 기회주의 측면이 강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름 공개했다가 정부한테서 연구비 좀 줄어뜰까봐 그러는 것인가. 이런 교수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국민들이 과연 신뢰할 수 있겠느냐. 지금이라도 공개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에너지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들이라는 바람직한 단체명을 지어놓고 정작 이름도 공개않고 떠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9차 수급계획 전기사업법에 따른 법적 절차와 법정 계획에 반영해 법적 절차적으로 충분히 이행했다”며 “전기사업법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에너지법에 따른 관련 절차를 거치고, 관련 계획에 따라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했다.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헌법에 따라 행정 입법 사법부로 삼권이 분립된 나라에서 매번 국민의견을 물을 수는 없다. 더구나 이번 사안의 경우 국민 의견을 다시 물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 이덕환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서강대 화학과 교수. 사진=이덕환 블로그
▲ 이덕환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서강대 화학과 교수. 사진=이덕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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