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이란 접두사는 명사 앞에 붙어 “그것을 벗어남”이란 뜻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탈핵(혹은 탈원전) 정책”이란 모든 핵발전소를 없애는 상황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을 뜻한다. 즉 핵발전소를 줄여가는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물론 현실에서 탈핵을 계량화하기는 좀 어렵다. 예를 들어 현재 가동 중인 고리 2~4호기와 월성 2~4호기 등 6기의 핵발전소를 2023년까지 폐쇄한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4~6호기와 신울진 1, 2호기 등 5기의 핵발전소가 2023년까지 완공되기에 핵발전소는 1기 줄어든다. 하지만 폐쇄되는 6기의 설비용량 합계(4650GW)보다 완공될 5기의 설비용량 합계(7000GW)가 1.5배나 더 많다. 따라서 핵발전소에서 생산할 전력량은 오히려 늘어난다. 이런 정책을 탈핵정책이라고 부를지는 시민사회 내부에 뜨거운 주제 중 하나다.

완성된 탈핵 기준은 명확하다. 단 한 기의 핵발전소도 가동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행과정에 탈핵 기준은 다양하다. 운영 중인 핵발전소 숫자로 할지, 설비용량으로 할지, 생산된 전력량으로 할지, 혹은 전체 전력생산 중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할지 등은 앞으로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탈핵 정책은 핵발전소의 숫자든 용량이든 그것이 줄이는 걸 뜻한다. 그런데 요즘 보수야당과 언론이 쓰는 “탈원전 정책 포기”란 말은 참 뜬금없다. 사실관계는 고사하고 개념조차 이상하게 잡고 있다.

▲ 11월27일 중앙일보 12면 ‘일본 이어 대만도 탈원전 포기… 아시아서 한국만 탈원전’
▲ 11월27일 중앙일보 12면 ‘일본 이어 대만도 탈원전 포기… 아시아서 한국만 탈원전’
대표적으로 중앙일보 기사 “일본 이어 대만도 탈원전 포기… 아시아서 한국만 탈원전”을 보자. 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 이카타 핵발전소 3호기를 재가동했다며 대표적 탈원전 포기 국가로 일본을 꼽았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 일본에는 54기의 핵발전소가 있었고, 전체 전력 중 핵발전 비중은 25% 정도였다. 54기 중 사고가 난 후쿠시마 1~4호기 이외에도 8기가 추가 폐쇄돼 42기의 핵발전소만 남았다. 하지만 실제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10기가 채 안 된다. 높아진 안전 규제를 통과해야 하고, 지자체 동의 절차 등 밟아야 할 것이 많아서다. 이 과정을 거쳐 재가동할 때마다 한국 보수언론은 “일본이 탈원전을 포기했다”며 보도하고 있다. 마치 폐쇄키로 한 핵발전소를 재가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카타 3호기 역시, 안전기준 심사를 위해 잠시 멈췄던 핵발전소다. 참고로 2017년 일본의 핵발전 비중은 3%에 불과하다.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15.6%다. 일본 정부는 핵발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핵발전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핵발전소만 재가동하면 탈원전 포기라고 쓰는 것은 벨기에 사례를 지칭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사에서 “원전 7기 중 6기를 중단한 벨기에”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 가운데 1기는 연료장전과 정기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고, 나머지는 냉각시스템이나 콘크리트 부식 등 설비 문제로 가동을 멈췄다. 정비를 마치고 겨울철 전력수요 증가에 맞춰 핵발전소를 재가동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 역시 우리 언론은 탈원전 정책 취소처럼 표현한다. 기사 어디에도 벨기에 정부가 밝힌 2025년 모든 핵발전소 중지 정책이 후퇴하기로 했다는 내용은 없지만, 정비를 마친 핵발전소가 가동했다고 “탈원전 후퇴”라고 언급한다.

▲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소재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 연합뉴스
▲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소재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 연합뉴스
정비를 위해 핵발전소를 멈추면 “탈핵”이고, 정비를 마치고 재가동하면 “탈핵정책 취소”이면 세계 각국의 에너지정책은 엉망진창일 것이다. 영구 폐쇄와 일시정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큰 틀에서 핵발전 정책을 보지 못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대만도 올해 초 정비를 마치고 핵발전소를 재가동하자 “탈원전 정책 취소” 기사가 우리 언론에 쏟아져 나왔다. 대만은 올해 초까지 6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다가 지난 10월 수명이 만료된 핵발전소 2기를 폐쇄했다. 나머지 4기도 2025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난다. 반면 건설 중이던 2기는 사실상 해체 작업 중이다. 미사용핵연료는 미국에 보내 구매국가를 찾고 있다. 이에 대만 정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이번 국민투표로 2025년 모든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명시한 법은 없어지지만, 현실적으로 2025년까지 모든 핵발전소가 멈출 것이고, 탈핵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 “탈핵정책 취소”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대만 정부가 언제 이미 폐쇄한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거나 수명연장 하겠다는 발표한 적이 있는가? 학술적 엄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사실관계에 입각한 기사 제목과 내용을 작성해야 하지 않을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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