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까지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을 ‘환과고독’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의지할 곳이 없는 취약계층이라는 사실이다. 홀아비나 과부는 육아로 인해 생업을 가지기 힘들고, 고아와 독거노인은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 모두 스스로 자력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다. 때문에 인정(仁政)을 이상 시 하는 조선왕조는 흉년이나 재난이 들면 의지할 곳 없는 환과고독을 가장 먼저 구제하려고 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교서에서 환과고독을 보살피는 것이 왕도정치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라면서 이들에 대한 구휼과 부역(賦役)을 면제한다고 했다. 그 뒤를 이은 정종과 태종, 성군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1435년(세종 17) 예조는 “환과고독으로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마땅히 불쌍히 여겨 구휼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식한 자들이 가족을 비롯한 매우 가까운 친척들까지도 관가(官家)에 맡기고서 거두어 보살피려고 하지 않아 얼고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사실을 조사하여 발각되면 죄를 주자는 위의 조목은 아뢴 바에 따라 시행하소서”라는 의견을 올렸다. 세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대로 시행케 했다.

▲ 세종대왕.
▲ 세종대왕.
세종은 정액 수세제도인 공법(貢法)을 제정하기도 했다. 당시 호조에서 전답(田畓) 1결당 10말[斗]을 거두자고 청하자 세종은 획기적인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우리가 지금껏 전제군주시대라고 표현해온 조선왕조에서 대국민여론조사를 한 것이다. 그 대상은 일반 백성들이었다. 총 17만 2천여 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찬성은 9만8000여명으로 약 57%였지만 세종은 강행하지 않았다. 토지의 비옥함이 다르고 풍흉에 따라 소출이 달라지기 때문에 척박한 토지를 가진 대다수 백성들은 빈익빈(貧益貧)이 될 여지가 있다는 황희(黃喜)와 맹사성(孟思誠) 등 신하들 의견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세종이 공법을 제정한 의도는 백성들에게 적게 거두는 것도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을 십분 이해해서다.

세종이 공법을 제정할 때 가장 염려한 계층은 바로 환과고독이었다. 공법이라고 해서 폐단이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법을 시행한지 2년 뒤 집현전 관리들이 공법의 폐단을 상소하자, 세종은 이들과 직접 만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집현전 응교 어효첨(魚孝瞻)은 부유한 자는 비옥한 토지를 가져 정액을 내는 것이 괜찮지만, 가난한 자들은 대부분 척박한 토지를 가지고 있어 흉년이나 재해가 들면 감당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 중에서 환과고독은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불쌍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왕으로서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은 바로 환과고독이라고 했다. 세종 또한 이들 때문에 관리들의 농간을 막기 위해 공법을 시행한다고 했다. 둘의 의견은 환과고독을 국가가 직접 보살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도 사회보장 대국민인식조사를 발표했다. 국민은 취약계층에 사회보장을 확대할 경우, 중점을 두어야 할 대상으로 노인, 저소득층, 한 부모·조손가정을 꼽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취약계층 중 국가의 지원이 가장 필요한 대상이 바로 환과고독이다. 여기에 또 한 그룹이 있다. 바로 미혼(未婚)이 아닌 비혼(非婚) 그룹이다. 이들은 신혼부부, 다자녀, 노인 등에 맞춰진 복지정책 때문에 아직도 국가나 사회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 고독사를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송언석 의원 블로그
▲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송언석 의원 블로그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제1야당 국회의원은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건 곤란하다며 한 부모 돌보미 예산 61억여원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2년 전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있을 땐 한부모 양육비의 확대를 강조했던 자신의 발언을 이렇게 쉽게 뒤집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를 안심하고 보살펴 줄 시설이 있어야 이들도 안정된 일자리를 구할 것 아닌가. 환과고독을 가장 불쌍히 여기며 보살폈던 세종대왕이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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