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가 입수해 보도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보고서에 대해 청와대가 강하게 부인하고 나서 진위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국가안보실 보고서가 아니라 청와대를 사칭한 메일의 첨부문서라면서 아시아경제에 출처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시아경제는 관련 보도를 삭제하지 않으면서 후속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간 아시아경제는 26일 오후 신문을 통해 두 건의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아시아경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평가와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입수했다면서 북미 관계가 절충점을 찾기 어려워 청와대가 협상 장기화를 전망했고, 남북 군사 합의서에 대해서도 한미 간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경제는 입수했다는 청와대 보고서에 대해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보고서 내용 일부를 기술했다.

“한국이 왜 종전선언을 서두르는지에 대한 (미국 내) 의혹이 증가하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인 의미라고 하면서 왜 종전선언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손상시키고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특히 남북 간 군비통제와 신뢰구축조치에 대한 충분한 사전 협의와 합의가 없었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한일 관계를 원만히 해결하거나 관리하지 못하고 있음과 동시에 중국쪽으로 경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의 조정을 조건이 아닌 목표시간을 가지고 추진하려고 하고 있고, 동맹에 대한 굳은 신념이 약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등이다.

▲ 26일자 아시아경제 보도.
▲ 26일자 아시아경제 보도.

아시아경제는 “우리 정부는 대외적으로 한미 공조의 ‘이상무’를 외치고 있다. 최근 북한 내 철도 공동조사에 대해 유엔 및 미국의 대북제재 면제 인정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 자화자찬했다”면서 “반면 보고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둘러싼 이견과 경쟁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어 관련 당사국간 평화체제에 관한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비핵화과정과 연동되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평화체제 논의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형식과 절차 면에서 주변국들이 한반도 평화라는 큰 전제에는 공감하지만 세부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아시아경제 보도가 사실이라면 청와대 내부에서 한미 공조에 이상이 있는 것을 물론 급속히 빨라진 남북관계 속도에 대해서도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지만 겉으론 이상이 없다라고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또한 특정 언론사가 청와대에서 가장 보안이 강한 국가안보실의 문건을 입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국과 민감한 외교 문제가 포함돼 있는 청와대 내부 문건이 언론 보도에 등장했다면 외교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것은 청와대 공직기강과 대통령의 레임덕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아시아경제가 입수했다는 보고서 관련 보도가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아시아경제는 보고서 내용을 인용할 때 작은 따옴표로 표기했다. 통상 문건의 내용이나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 큰 따옴표로 표기하는데 작은따옴표로 표기했다는 것은 보고서상 문구를 직접 인용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청와대는 아시아경제 보도가 나온 후 3시간 만에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반박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아시아경제에서 보도한 보고서는) 청와대나 청와대 안보실에서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김 대변인은 한 장의 청와대 내부 보고서를 가져와서 보여준 뒤 “청와대에서 어떤 형식이든 문서를 만들면 제일 위처럼 ‘이 문서는 무단으로 복사‧반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THE REPUBLIC OF KOREA’라고 해서 워터마크가 찍혀 있고 마지막에 문서를 출력한 사람의 이름과 시간이 초 단위까지 나오도록 되어 있다. 이건 복사를 해도 이 워터마크는 그대로 찍힌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의 문서가 아니다. 안보실에서 작성한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구체적으로 아시아경제에서 보도한 문건이 한 대학 연구원 명의를 사칭한 이메일에 첨부된 문서로 파악했다.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연구원 서아무개씨가 보냈다는 이메일에 첨부된 문건의 제목이 아시아경제가 보도한 문건의 제목인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평가와 전망'과 같은 것으로 나왔고, 특히 해당 메일은 연구원 이름을 사칭한 가짜 메일로 밝혀졌다고 반박했다.

서아무개씨는 jtbc 인터뷰에서 “제 계정을, 해킹을 당해서 그 문건을 사람들에게 보냈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권희석 청와대 비서관 명의로 민감한 사안이 포함된 보안메일을 보내니 취급 주의해달라는 메일을 중국정책연구소는 받았는데 조사 결과 관련 내용도 가짜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청와대는 어느 특정 세력이 가짜 보고서를 유통시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경제는 하루가 지난 27일까지도 해당 기사를 내리지 않았다. 문건의 출처, 문건 내용의 신빙성 등을 따졌을 때 청와대의 반박처럼 가짜보고서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시아경제는 보고서 출처에 대해선 함구하면서 청와대의 반박 내용처럼 사칭한 메일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A기자는 “사칭 메일에 첨부된 문건이라고 한다면 외교안보 기자가 한 두 명도 아니고 똑같은 메일을 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며 청와대 반박을 간접 부인했다.

보고서 진위 여부가 밝혀지면 청와대와 아시아경제 어느 한쪽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내부 문건 내용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면 문건 유출의 책임부터 한미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아시아경제가 제대로 출처 확인 없이 보도한 것으로 드러나면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법적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