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부 기자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유명한 연예계 공식 커플이었던 배우 A와 B가 결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OO씨, 아는 점쟁이 있지? A랑 B랑 궁합 좀 봐봐.”

기사가 뜨자마자 사무실 밖으로 나온 국장은 기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했다. 어떤 기자는 ‘A와 결혼하는 B는 누구?’ 같은 기사를 쓰고, 또 어떤 기자는 두 사람의 과거 애정 행각을 엮어 쓰기 시작했다. 각자 일하던 사람들이 한 이슈로 달려들어 일사불란하게 기사를 작성하는 광경은 낯설고 신선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기분은 잠시였다. 시간이 흐르고 열애, 결혼설 취재가 반복되자 재미있던 것들은 당연히 해야 되는 것들이 됐고, 다시 ‘이런 걸 왜 써야 하나’라는 의문으로 변했다. 특히 이번 조수애 아나운서의 사례처럼 여성 방송인 및 여성연예인이 재벌가나 재력가와 결혼한다는 내용이 알려졌을 때 의문은 더 깊어진다.

‘조수애는 모태미인’, ‘미모서열 2위의 자신감’, “조수애 아나, 과거 ‘돈 없어도 OK’...이중적?” 재벌가 인물이나 재력가와 결혼하는 여성들은 그들의 능력과 재력 등과 상관없이 미모로 평가를 받고, ‘검소하지 못 하다’거나 ‘돈을 밝힌다’는 취급을 받기 일쑤다. 이번에도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들이 대거 양산됐다. 이런 보도들은 결혼 발표 당일에만 수 십, 수 백 건 쏟아졌고, 유력 포털들의 메인을 장식했다.

▲ 조수애 아나운서의 결혼 발표 이후 나온 기사들.
▲ 조수애 아나운서의 결혼 발표 이후 나온 기사들.
‘남들이 뭘 검색하는가’를 보여줄 뿐인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인기의 척도 내지 알아야 할 정보의 기준쯤으로 생각되기 시작하면서 조회수에 목마른 언론사들의 검색어 헌팅은 점차 치열해져갔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신문을 사서 보지 않는 세상에서 언론사의 수익 창출 수단은 오로지 광고 뿐. 사정이 이렇다 보니 ‘A와 B가 결혼한다’는 내용만 전달하면 충분할 사안에 대해 온갖 잡다한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조수애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의 경우 남편이 될 박서원 대표의 전처까지 도마 위에 올라 ‘성격이 어떻다더라’는 입방아의 대상까지 됐다.

물론 ‘어디까지가 독자들의 알 권리인가’를 판가름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연예부의 경우 더 그렇다. 유명세를 먹고 사는 스타들은 자신의 가족 등 사생활을 공개하면서 인기를 더 높이기도 하고, 대중 역시 이런 정보를 유쾌하게 바라본다. 유독 연예부에서 사생활 관련 소식이 많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 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예인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기사화하는 게 정당화될 순 없다. 사안마다 상황마다 지켜야하는 선은 각각 다르고, 이를 판단하는 건 다름 아닌 언론의 몫이다. 시스템이 문제라면 그것을 바꿔나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지 그것에 휩쓸려 지속적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그를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한다는 기자라 부를 수 있을까.

조수애 아나운서 이전에 김수현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이 있었다. 상대는 유명 게임 크리에이터 우왁굳. 유명 게임 BJ의 결혼인 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고, 김수현 아나운서의 이름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 시작했다. ‘청순한 미모의 끝판왕’, ‘트와이스 쯔위 닮은꼴’, ‘한줌 개미허리’, ‘완벽 뒤태’ 같은 외모 품평 기사들이 어김없이 쏟아졌다.

수현이와 만난 건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다. 수시 1학기 전형으로 대학교에 합격해 다른 이들보다 일찍 대학교 생활을 체험하기 시작한 동기로 같은 학부에 있으면서 졸업 때까지 제법 친하게 지냈다. 얼굴도 예뻤지만 마음은 더 예뻐서 가끔씩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너 이렇게 착해서 어쩌냐’는 반응이 절로 나왔다. 그런 친구가 실검의 주인공이 되고 나니 실시간 검색어에 장악된 언론사의 행태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 정진영 한국스포츠경제 기자
▲ 정진영 한국스포츠경제 기자
재벌가 인물과 결혼하는 OOO 아나운서의 미모는 누구의 알 권리인가. 그것을 품평할 권리를 누가 언론에게 주었는가. 이제 우린 그만 실시간 검색어에서 눈을 떼고 언론 본연의 기능이 무엇이었는가에 시선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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