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오늘(25일) 2년을 이어온 ‘소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하는 모의투표가 아니라 진짜 국민투표다. 결과는 한국시간으로 25일 밤늦게나 26일 새벽에 나온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스위스의 소뿔 논쟁은 정치적인 동시에 진지한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다. 소뿔 옹호론자는 소뿔은 소의 존엄성이고 정체성인데,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농업이 이를 말살하고 인간 편의를 위해 소뿔을 제거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스위스에서 사육하는 소의 4분의 3은 뿔을 제거한 소이거나 태생적으로 뿔이 없는 소다.

▲ OBS 월드뉴스 화면 갈무리
▲ OBS 월드뉴스 화면 갈무리

스위스 오늘 ‘소뿔 논쟁’ 국민투표, 2년 갈등 종지부

스위스에선 소의 뿔이 자라기 시작할 때 소에게 진정제를 먹이거나 뜨겁게 달군 쇠로 뿔을 지지는 식으로 소뿔을 제거한다. 이 과정이 잔인하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 측인 소뿔 제거론자들은 개나 고양이 중성화처럼 소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맞선다. 이들은 소뿔을 그대로 두면 소들끼리 싸울 때 큰 상처를 입고 사람에게도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스위스 농부 아르맹 카폴(66)이 제안해 10만명 넘는 동의를 받은 ‘가축 존엄성법’에 따르면 소뿔을 제거하지 않는 농부에게 정부가 소 1마리 당 연간 190스위스프랑(21만6000원)의 보조금을 주도록 돼 있다. 스위스에선 국민 아무나 법안을 제안해 18개월 동안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20일 “스위스 일요일 ‘소뿔 찬반’ 국민투표”(Cows with or without horns? Swiss to vote on Sunda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소식을 상세히 다뤘다. 로이터에 따르면 법안을 낸 아르맹 카폴은 “소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 소를 보면 늘 머리를 들고 자부심이 있다. 뿔을 제거하면 소들은 슬퍼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언론은 석간 문화일보가 지난 23일 28면에 ‘소뿔 뽑아야 할까요?…스위스 가축존엄성 국민투표’란 제목으로 짧게 보도했다. OBS와 헤럴드경제도 국제뉴스로 이 소식을 다뤘다.

▲ 문화일보 11월23일자 28면
▲ 문화일보 11월23일자 28면

스위스 연방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해마다 3000만 스위스프랑(340억원)이 필요한데 이는 프랑스 농업 예산의 1%에 해당하는 큰 돈이라는 거다.

국가주의 감성에다 철학적 담론, 과학적 연구까지 동원

국민투표를 주도한 아르맹 카폴(66)은 농업학교 교장이기도 하다. 카폴씨는 ‘소 이해하기’란 책을 펴내 소의 존엄성을 철학적으로 주장했다.

스위스 하면 알프스이고, 알프스 하면 산과 푸른 들판을 떠올린다. 들판 위를 한가롭고 당당하게 거니는 소떼는 스위스를 하나로 묶어내는 정치적 상징이다. 그런 만큼 스위스의 상징인 소를 온전하고 당당하게 하려면 소뿔을 제거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카폴씨는 ‘마테호른도 뿔이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 법안을 발의한 아르맹 카풀(66). OBS 월드뉴스 화면 갈무리
▲ 법안을 발의한 아르맹 카풀(66). OBS 월드뉴스 화면 갈무리

실제 스위스 관광엽서엔 농부들이 소떼를 끌고 들판을 누비는 사진이 유독 많다. 사진의 배경인 들판은 소떼가 말끔히 먹어 치운 덕분에 잘 조경된 잔디밭처럼 깔끔하다. 카폴씨는 만약 소가 없었다면 알프스 들판은 마구 자란 잡초 더미로 뒤엉켜 결코 스위스의 상징이 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소의 공적을 인정해 스위스 정부는 풀이 부쩍 자라는 여름에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소 한 마리마다 400스위스프랑(50만원)씩 준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이 돈이 절대 농업보조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스위스의 절대 수익원인 관광에 소가 기여한 대가를 인정하고 그 몫을 소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위스의 축산농가가 평균 25마리의 소를 기르기에 여름철에만 풀 제거 수입만 1000만원이 넘는다.

소뿔 제거론도 만만치 않다. 소뿔이 존엄의 상징이라 해도 공격 무기가 된다는 거다. 이들은 소뿔이 소에게도 그다지 이득도 없고 그걸 제거하는 데 큰 고통도 없다고 주장한다. 소에게 중요하지도 않은 소뿔을 그대로 두면 그 위험 때문에 소를 가두거나 활동을 제약해야 해 결국 소는 소뿔 때문에 더 불행해지고 ‘존엄’도 훼손된다며 소를 위해 하는 일이 소를 더 괴롭힌다고 주장한다.

반면 카폴씨처럼 소뿔 옹호론자들은 ‘과학적 연구’까지 동원했다. 베른대 연구결과 소뿔을 제거하면 소에게 당장은 영향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고 한다.

정부는 예산 때문에 ‘부정적’…찬반 49:46 팽팽

스위스 정부는 법안이 통과되면 해마다 소 한 마리마다 21만원씩 약 340억원이 필요해 예산부담이 크다는 거다. 지금도 스위스 농가 수입의 40% 이상이 보조금이다. 결국 스위스 의회는 해당 법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오늘(25일) 치러지는 스위스 국민투표에는 소뿔 논쟁 외에도 ‘국가 자결권’ 관련 법안도 들어있다. 이 법안은 ‘스위스 국내법이 국제법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연합과 기타 국제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취지다. 확장되면 국가주의로 갈 위험성도 안고 있다. 소뿔 옹호론자는 국가자결권 법과 연결지어 ‘소의 자결권’을 주장하며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소뿔 옹호론이 49%, 소뿔 제거론이 46%로 오차범위 안에서 옹호론이 약간 앞섰다. 그러나 옹호론이 앞선 여론조사 때보다 줄어들어 최종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만큼 팽팽하다. 이런 가운데 양측 모두 ‘소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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