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TV조선은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시상식 소식을 각각 24일 자 아침신문과 23일 온라인뉴스로 보도했다. 수상자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라는 소설을 쓴 이기호(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부교수) 작가였다.

동인문학상은 소설가 김동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학상이다. 이 상은 조선일보가 지난 1987년부터 현재까지 주관하고 있다. 동인문학상은 작가 김동인의 친일행적 때문에 한편에선 친일문학상으로 평가받는다. 김동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도 ‘일본 시민’일 따름”이라며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선전·선동해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 25일 자 조선일보 29면
▲ 24일 자 조선일보 29면

조선일보(대표 방상훈)가 주관하는 ‘제49회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23일 서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과 김동인의 차남인 김광명 한양대 명예교수,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 다수의 소설가·시인·수필가·문화평론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같은 날 친일문인 김동인을 기념하는 ‘동인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가 서울 조선일보 미술관 동화면세점 뒤편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한 학생시민연대, 인천 민예총 등 시민단체 관계자와 시민 4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성명서 발표와 규탄 발언 등을 했다.

연합뉴스는 같은 날 ‘동인문학상 폐지 집회’ 소식을 전했다.

정세훈 인천 민예총 이사장은 이날 집회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문학계에 여전히 ‘친일문인’을 기리는 기념사업과 ‘친일문인기념 문학상’이 도사리고 있다. 일제에 적극 옹호하고 일본국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전범은 처벌돼야 하지만, 친일문인들은 전혀 단죄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문단의 권력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문학계 인사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조선일보 미술관 앞에서 "친일문인 김동인을 기념하는 동인문학상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문학계 인사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조선일보 미술관 앞에서 "친일문인 김동인을 기념하는 동인문학상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누구보다 올바른 양심을 지키고 문학적 자존감을 지녀야 할 작가들이 공모에 영혼을 팔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하고, 국민갈등을 부채질하고, 친일보수 편향적인 여론책동에 몰두하는 조선일보에서 주는 친일문인기념상의 대표 격인 ‘동인문학상’을 한국의 소설가들은 그렇게도 받고 싶냐”고 비판했다.

집회참가자들은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일보는 친일문인 기념하는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문인을 조선일보는 왜 기념하고 있는가”, “김동인의 패악질을 한국의 작가들은 정녕 모르는가” “친일문인문학상을 버젓이 주고받는 한국문단은 도대체 무엇인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9년 일제강점기에 김동인이 학병, 징병을 독려하는 글을 쓰고 내선일체를 강조해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소설가 고종석씨(당시 한국일보 논설위원)는 지난 2003년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 소식을 후배로부터 전해 들은 고씨는 한국일보 12월25일 자 칼럼에서 “동인문학상 생각”이라는 제목을 달고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의 후보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고씨는 “나는 안티조선 운동에 공감한다”며 “동인문학상에 비판적인 이유는 심사위원단의 종신화와 상금의 파격적 인상, 상시적 독회 평가의 기사화를 뼈대로 한 세 해전의 체제 개편 이래, 한국문단에 대한 조선일보의 아귀힘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품의 됨됨이로 보나 조선일보에 대해 취해온 입장으로 보나 도저히 이 상의 수상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고 그 얼굴을 지면에 실은 데 대해 조선일보 쪽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 지난 2003년 12월25일 자 한국일보 칼럼
▲ 지난 2003년 12월25일 자 한국일보 칼럼

이에 당시 김광일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은 27일 조선일보 30면에 “동인문학상 ‘조롱한’ 고종석씨에게”라는 칼럼 제목을 달고 “고씨가 말했듯이 우리는 그가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혀온 인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그 결과를 기사화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소설가 황석영과 공선옥씨도 각각 2000년과 2001년에 동인문학상 후보 거부 의사를 밝혔다. 황석영씨 역시 지난 2000년 7월19일 한겨레 특별기고를 통해 “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썼다.

황석영씨는 “요즈음 ‘조선일보’는 정치·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 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 보다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 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 가까운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다”며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해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그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학상이 세계관의 한 표현일진대 나는 ‘조선일보’ 측의 ‘동인문학상’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에서의 동인의 위치에 대하여도 이견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귀측의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일단 밝혀두려고 한다”고 전했다.

한편 동인문학상은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사가 1955년부터 김동인의 문학적 유지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해 이듬해 ‘바비도’를 쓴 김성한 작가를 1회 수상자로 선정한 이후 1961년 남정현 작가의 ‘너는 뭐냐’(6회), 1966년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10회), 1967년 최인훈의 ‘웃음소리’(11회) 등을 선정해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발전했다. 

동인문학상은 1968년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12회) 시상을 끝으로 사상계사가 운영난에 빠져 중단됐다. 박정희 정권의 사상계 탄압이 이유였다. 그 뒤 10여년 공백기를 거쳐 1979년 동서문화사가 상을 부활시켜 8년 가량 운영하다가, 1987년 18회부터는 조선일보사가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상을 받은 이기호 작가는 49회 수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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