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게 ‘수신료’는 아킬레스건이다. 37년째 수신료가 월 2500원으로 동결돼 있는데도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느냐’는 질문 앞엔 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정필모 KBS 부사장이 지난 5월 수신료 인상안과 관련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신뢰를 회복한 다음 논의해야 한다”고 밝힌 이유다. 정권과 유착했다고 비판 받았던 전임 KBS 경영진이 과거 정치권, 언론과 접촉에 나섰을 때도 수신료 인상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NHK가 수신료 인하 방침을 밝혔다는 소식을 통해 KBS 수신료를 오히려 낮춰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3일자 “일본 NHK, 방송 수신료 4.5% 인하 방침”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NHK의 수신료 인하는 한국 공영방송 KBS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KBS도 매년 수신료 수입이 증가했지만, 인하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일부 사실만을 취사선택해 사실상 왜곡에 가까운 보도를 했다.

NHK와 KBS는 절대적인 수신료 수준이 다르다. 조선일보는 “(NHK 수신료가 인하되면) 한 가구당 한 달 약 57엔(570원) 수신료를 덜 내게 된다. 위성방송 수신료는 한 달 100엔씩 내린다”며 “현재 NHK는 지상파 방송의 경우 한 달 1260엔, 위성방송의 경우 2230엔씩 수신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23일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각각 약 1만2500원, 2만2000원 선이다. 월 2500원인 KBS 수신료의 5~9배 수준이다.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 비중은 NHK가 90%를 넘는 반면 KBS는 40%대다.

▲ 11월23일 조선일보 1면.
▲ 11월23일 조선일보 1면.

NHK와 KBS 모두 수신료 수입이 증가했다며 동일선상에 둔 대목도 따져봐야 한다. 우선 NHK 수신료 수입은 KBS의 약 10배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수신료 수입에서 NHK는 6913억엔, 한화로 6조9959억원인 반면 KBS는 6462억원이다. 조선일보는 KBS 수신료 수입이 2008년 5621억원에서 2017년 6643억원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는데, KBS 측은 실제 수신료 수입은 2008년 5468억원, 2017년 6462억원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바로잡았다.

NHK는 수신료 징수와 관련해 상대적으로 순풍을 타고 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대로 “작년 12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NHK 수신 계약이 의무라는 방송법은 합법’ 판결을 내린 뒤 수신료 수입이 더 증가”했다. NHK는 지난 5월 수신료 수입이 4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수신료 지불 비율도 처음으로 80%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NHK의 수신료 신규 계약 건수는 76만건 증가했다.

일견 합당한 지적도 있다. 조선일보는 KBS 수신료 수입이 늘어난 이유로 ‘1인 가구의 급증’을 꼽으며 “PC·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젊은 1인 가구는 TV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매달 한전의 전기요금에 2500원씩 수신료를 합산해 징수하는 ‘강제 징수’ 탓에 TV를 보지 않는데도 시청료를 내는 가구가 증가”했다고 했다.

실제 수신료 분리 징수는 수년 간 시민사회, 정치권 등에서도 요구해 온 문제다. KBS도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에 “수상기 소지여부를 확인할 제도적 장치의 미비, 수상기 소지자에게 변경신고의무를 부과한 현실성 없는 제도” 등 문제가 있다며, “수상기 확인 권한, 행정기관 주소정보 활용 등 입법화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 변화와 수신료 문제를 논하려면 빼먹지 말아야 했을 정보가 있다. NHK 수신료 인하는 인터넷 수신료 징수 방안과 연계된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19년부터 인터넷으로 TV 방송을 24시간 동시 전송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NHK도 인터넷 상시 동시전송에 힘을 실어왔다. ‘수신료 불평등 해소’를 명목으로 PC·스마트폰 이용자들로부터 수신료를 걷을 근거를 만든 셈이다.

▲ K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K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실리에 따라 ‘오락가락’…수신료 비판 진정성 의문

KBS가 공영방송으로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수신료를 인상할 수 있다는 비판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그간 수신료 문제를 대한 태도는 비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대체로 수신료 인상 반대 주장을 펼쳐온 조선일보는 공교롭게도 KBS 수신료가 자사 수익과 연관될 수 있는 시기에는 입을 다물었다.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 40% 인상안’을 무리하게 추진해 비판받았던 지난 2011년, 언론은 KBS 수신료 인상의 근본 목적으로 ‘조중동 퍼주기’라고 지목했다. 수신료 인상을 대가로 KBS 광고를 축소해 그 몫을 종합편성채널의 연착륙 재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었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을 강행 처리한 다음날인 2011년 6월22일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이 여당 행태를 비판했을 때 조선일보는 침묵했다. [관련기사 : 조중동 'KBS 수신료' 기사가 없다]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보도한 이른바 ‘김인규 임원회의록’을 보면 김인규 당시 KBS 사장은 2011년 1월29일 수신료 대책 회의에서 “며칠 전 방상훈, 홍석현 사장을 만났다”고 전한 데 이어, 3월11일 회의에선 “조선 방(상훈) 사장 만났는데 기자들 설득하라고 했다”며 2TV 광고를 빼 종편에 돌아갈 광고 파이를 넓힐 테니 수신료 인상에 우호적인 기사를 써 달라는 취지를 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 수신료 인상 앞두고 김인규는 왜 방상훈을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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