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판사들에 대한 ‘탄핵 검토 촉구’를 결의하면서 이제 국회가 실제 탄핵 소추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사법농단 사건을 국회가 매듭을 지어야 하지만 탄핵소추 요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관계, 탄핵소추 대상의 재판관 선정 등 여러 문제가 얽혀 흐지부지 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나온다.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려면 우선 탄핵 안건을 올려야 한다.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기 위해선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129석을 가진 민주당 의원들만으로도 탄핵소추안 발의는 가능하다. 문제는 의결 요건이다. 재적의원 과반이 찬성해야 의결된다. 150석 의결 요건을 채우면서 야권의 도움이 필요하다.

법관 탄핵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과 내부 의견이 갈리는 바른미래당을 제외하고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을 합치면 157석이 나오지만 실제 찬성표로 나올 수 있을지 장담키 어렵다. 민주평화당 안에서도 법관 탄핵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관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적은 없다. 과거 두 번에 걸쳐 탄핵소추안이 올라왔지만 의결에 이르진 못했다.

지난 1995년 유태흥 대법원장 탄핵 소추 결의안이 부결됐고, 지난 2009년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안은 국회법(기한경과규정)에 따라 폐기된 적이 있다.

물론 과거와 현재 법관 탄핵은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과거엔 특정 법관의 판결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해 탄핵소추안이 나왔지만 이번엔 박근혜 정권과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했다는 증거들이 쏟아지고 법관들이 직접 나서 탄핵 소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법부 불신이 팽배해 국민 여론의 압박이 거세다. 다만 이번 법관 탄핵은 대상자부터 정하고 탄핵사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난한 정치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지나면 탄핵소추 찬성 여론 흐름도 바뀔 수 있다.

해외에서도 법관 탄핵은 손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높은 독립성과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탄핵소추 전권은 연방하원이 가지고 있다. 탄핵심판은 연방상원이 전권을 가지고 있다. 하원 사법위원회가 탄핵 대상에 오른 법관을 조사하고 다수결로 의결하면 보고서를 하원 본회의에 제출하고 하원이 일반의결정족수에 따라 탄핵소추를 의결하면 탄핵심판이 상원으로 넘어간다. 상원은 심리를 진행하고 법관이 혐의를 인정하면 표결 없이도 탄핵을 할 수 있다.

이 같은 절차에 따라 미국에서 탄핵된 사례는 1803년 이래 8명이다. 하원에서 연방법관 15명이 탄핵소추됐지만 상원에서 7명이 기각돼 8명이 탄핵됐다. 연방대법관의 경우 한명이 하원에서 탄핵소추됐지만 상원에서 기각됐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 법관의 탄핵소추 사유는 정신적 불안과 재판 중 주취상태, 재판 중 자의적이고 고압적인 재판지휘, 권한 내용, 재판거부, 소송 당사자와의 부적절한 사업상 관계, 위증, 뇌물 요구 모의 등이었다.

▲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5개 정당 국회의원 9명과 함께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을 주제로 9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5개 정당 국회의원 9명과 함께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을 주제로 9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일본의 경우 국회에 탄핵재판소를 설치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중의원과 참의원 동수 위원으로 구성된 재판관소추위원회가 탄핵소추 권한을 갖고, 탄핵재판소도 중의원과 참의원 동수로 구성돼 의결한다.

특히 일본은 일반 국민도 탄핵 청구를 할 수 있다. 일본 재판관소추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1948년부터 2007년까지 탄핵소추 청구 건수는 최고재판소 8건, 변호사 2666건, 일반국민 89만4243건으로 나왔다. 재판관소추위원회가 수리한 건수는 1만9814건이었고 소추까지 이뤄진 건수는 9건이었다. 재판관 9명 중 7명이 파면 결정됐고 2명은 기각됐다. 일본 재판관의 파면 사유는 직무태만, 뇌물, 여성에 대한 스토킹행위, 아동 성매매 등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는 직무에 관한 위헌, 위법 행위만을 탄핵사유로 정하고 있음에 비하면 주요국들은 더 넓은 탄핵사유를 정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회의 관여가 소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일반 국민의 탄핵소추청구제도가 마련된 경우가 있다는 점 등은 특이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참고로 사법부의 독립원칙을 엄중히 하면서도 사법권력 남용에 대해서 제대로 견제하는 실효성있는 탄핵제도가 되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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