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26일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 창립대회가 열린 역사적 날이다. 언론노련은 21세기 들어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으로 전환하며 산별노조가 되어 언론인과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수많은 시도와 싸워왔다. 언론노조는 “독재정권과 언론소유주의 야합에 의해 저질러진 대규모 기자숙청, 편집권의 제도적 침탈, 언론관계악법 등 왜곡된 언론질서를 척결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언론질서를 수립할 것”이라는 언론노련 창립선언문에 담긴 정신을 계승해왔다.

그러나 30년간 미디어환경이 급변해온 만큼 언론노조가 풀어내야 할 숙제는 복잡해졌다. 언론노조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해졌다. 언론계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언론 산업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부터 언론노조는 ‘민주언론’이란 구호를 넘어 수많은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디어오늘이 언론노조 창립 30주년을 맞아 언론노조를 바라보는 30개의 시선을 담았다. 솔직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대부분 익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주)

“언론 노동자라는 한마음 가질 수 있도록” - TV조선 기자

언론노조가 창립 30주년을 맞았지만 과연 언론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했는지 의문이 든다. 과연 언론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인지, 그 대표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워낙 다양한 직군들이 있기 때문에 일부 이해되는 면이 있지만 기자들 입장에서는 언론노조보다 기자협회가 자신들을 대표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PD들은 PD연합회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노조 특성상 진보 성향을 보이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 종사자의 복리 후생이나 처우 등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 투쟁적 성향을 더 보이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외부 투쟁에 앞서 내부 종사자들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언론사 내부 기자나 PD 등 이른바 지식 노동자들과 인쇄 등 육체 노동자들 간 이질감이 있는 게 현실이다. 다양한 직군에서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과연 언론노조가 이들 목소리를 통합하기 위한 작업들을 그동안 해왔는지 의문이다. 내부 노동자들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언론 노동자라는 한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언론노조는 노동계 내부에서 금속노조나 금융노련 등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존재감이 떨어진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노동계 변두리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 등으로 굳이 언론노조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론노조는 먼저 언론 노동자들 내부 통합에 더 심혈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담아내야 비로소 언론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래야 노동계 내부에서도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 또 외부 정치 투쟁에 앞서 언론 노동자들의 복리 후생과 처우,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노력과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지상파 3사가 언론노조 전체 향방 정해, 수의 횡포” - 1988년 입사한 신문기자

언론계에 발을 디딘 1988년은 전환기였다. 앙시앙레짐이 무너지고 새 질서가 태동하던 시대였다. 그 변화의 핵은 노동조합 결성이었다. 바야흐로 노동조합의 전성시대였다. 단위사 노조위원장이 ‘감투’가 됐고 많은 언론사에서 치열한 선거를 통해 쟁투해야 할 ‘권력’이었다. 그해 11월 신문·방송·통신 중심으로 41개 노조가 모여 결성한 것이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이었다. 편집권 및 편성권의 독립과 언론 종사자들의 지위 향상이 양대 목표였다.

언론노조 30년을 맞아 새삼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작금의 언론노조가 과연 민주언론과 언론노동운동이라는 두개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얼마나 구성원들 지지와 연대를 끌어 모으고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다. 무엇보다 언론노조의 정책 기능을 획기적으로 확대, 발전시켰으면 한다. 정책실 규모를 키울 수 없다면 국내외 전문단체 및 싱크탱크들과 연계라도 해서 하나의 싱크탱크로 거듭 났으면 한다. 민주언론과 언론노동운동 모두에 전문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매년 3월 단체협약 모범안과 임금인상 요구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만 민주노총의 가이드라인을 Ctrl+C해서 Ctrl+V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책과 현장에 전문 인력을 배분하지 않으면 ‘머리’는 없이 ‘발’만 있는 모순을 벗어나기 어렵다. 질적인 변화는 사람에서 비롯된다. 단위노조에서 전임자 내놓기 어렵다면 과감하게 언론노조 상근자들을 전문가 집단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언론노조 전체 향방을 정하는 ‘수의 횡포’는 언급할 마음마저 들지 않는다.

▲ 지난 2017년 9월4일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김장겸·고영주 퇴진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2017년 9월4일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김장겸·고영주 퇴진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 언론노조 소속 10년차 이하 방송기자

가끔 잊어버린다. 내가 기자인 동시에 언론 노동자라는 사실을. 그런 나에게 언론노조는 언론인인 동시에 노동자인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죽비 같은 존재다. 같은 노동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기자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큰 자산이다.

하지만, 정말 온전히 노동자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언론노조에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개별 사업장, 언론사의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지 않는 점이 가장 불만이다. 특히 산별교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더욱 그렇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과 언론노조는 ‘유연근로제’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라는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어떻게 해도 개정 근로기준법 기준인 52시간을 충족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시간을 맞추다가 기자로서 시청자와 독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는 유연근로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로서 불이익을 최소화하면서도 현행법을 준수하고, 언론인으로서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노조는 유연근로제에 반대한다는 선언적인 입장만 있을 뿐 대안에 대한 연구나 고민은 없다.

언론인과 노동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충족하는 일은 물론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언론노조는 그 난제를 풀어야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 현장의 괴리를 줄여주는 언론노조가 되기 바란다.

“보수 언론을 색안경 끼고 본다” - 非 언론노조 소속 종합일간지 기자

언론노조는 언론계의 맏형님 같은 느낌이다. 언론 민주화에 언론노조가 노력한 것 잘 안다. 그러나 너무 배타적이다. 보수언론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 보수언론이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건가. 언론노조는 그 역할을 전부 부정한다. 시민단체야 과격하게 비난할 수 있지만 언론노조는 달라야 하지 않나.

시민단체처럼 특정 매체만 지목해 비난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전체 언론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공정성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런 것보다는 특정 보수언론을 과녁 삼아 공격한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 30년은 언론 민주화의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30년은 언론 노동자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하는 시대다. 그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를 테면 주 52시간이나 언론사 내 만연한 채용 갑질 문제에 있어 초년 언론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힘을 기울이면 좋겠다. 장기적으로 예비 노동자 권익을 위해서도 힘을 써줬으면 한다.

[ 관련기사 ]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① 드라마제작사 PD, 인터넷신문 기자, 지역방송 교양PD, 공영방송 라디오 PD, JTBC 기자, 지상파 예능 PD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② 전직 민영방송 노조위원장, 비정규 방송스태프, 독립제작사 조연출, 방송차량 운전노동자, 전직 언론노조 간부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③ 경제지 기자, 언론노조 소속 신문기자, 방송작가, 전직 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 1988년 언론노련 조합원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④ TV조선 기자, 1988년 입사한 신문기자, 언론노조 소속 방송기자, 非 언론노조 소속 종합일간지 기자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⑤ 프리랜서 방송인, 여성계 인사, 언론사 입사 준비생,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⑥ 미디어기구 종사자, 전직 언론노조 활동가, 언론학자, 언론시민단체 활동가, 희망연대노조 활동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