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26일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 창립대회가 열린 역사적 날이다. 언론노련은 21세기 들어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으로 전환하며 산별노조가 되어 언론인과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수많은 시도와 싸워왔다. 언론노조는 “독재정권과 언론소유주의 야합에 의해 저질러진 대규모 기자숙청, 편집권의 제도적 침탈, 언론관계악법 등 왜곡된 언론질서를 척결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언론질서를 수립할 것”이라는 언론노련 창립선언문에 담긴 정신을 계승해왔다.

그러나 30년간 미디어환경이 급변해온 만큼 언론노조가 풀어내야 할 숙제는 복잡해졌다. 언론노조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해졌다. 언론계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언론 산업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부터 언론노조는 ‘민주언론’이란 구호를 넘어 수많은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디어오늘이 언론노조 창립 30주년을 맞아 언론노조를 바라보는 30개의 시선을 담았다. 솔직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대부분 익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주)

“현장에서 갑질 하는 사람이 언론노조 조합원”- 드라마제작사 PD

드라마 산업 환경에서는 방송스태프들의 52시 간 문제가 최대 현안이다. 그런데 언론노조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과연 언론노조와 관계가 없는 문제인가.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 촬영 현장도 스텝은 99% 프리랜서다. 그 현장에서 인명사고도 나고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노조가 해온 역할이 있나.

드라마PD들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인 듯, 어중간한 입장이 많았다. 드라마는 방송프로그램의 제작현장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이 투입되는 현장이지만, 그 현장은 언론노조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노조는 정치적인 부분에선 가장 민감하게 싸웠지만, 현장의 노동 강도나 제작관행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도 안 하는 것 같다. 싸움의 결과로 지금 방송사 사장 바뀐 것에 만족하는 것 같다.

현장에서 갑질하고 쥐어짜는 사람들은 지상파PD들로, 이 중엔 언론노조 조합원도 있다. 노조원들이 노조원도 되지 못하는 스텝에게 갑질하는 부분에 대해 언론노조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드라마PD들의 갑질이 심하다.

방송사는 제작사에 노동시간 준수를 강제해야 한다. 그럼 제작비는 올라간다. 이 부분을 해결하는 지점에서 과거 지상파 사장들과 지금 바뀐 사장들이 뭐가 다른지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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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언론노조 가입하고 싶었지만…” - 인터넷신문 기자

언론노조는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노조가 있는 이유는 언론인들의 취재자유를 보호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건데 언론노조원이 아닌 기자 입장에서 보면 언론노조 보호 밖에 있는 사람들의 귀는 너무 기울이지 않는다. 다 같은 언론인인데 언론노조는 피아식별을 하는 것 같다.

언론노조원이 없는 연예 쪽은 정말 약소한 매체들이 많고 문제도 많다. 인턴이란 이름으로 아르바이트생처럼 기자들을 부려먹다 소송이라도 걸리면 내치고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다. 최저임금 주며 하루 종일 쉴 세 없이 우라까이 시키다 기자들을 일회용품처럼 버린다. 그렇게 50%의 연예매체 기자가 1년 안에 떠난다. 아무도 취재 윤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언론노조는 이런 문제에 관심 갖지 않는다. 회원사가 아닌 언론매체와는 연대가 없다.

많은 인터넷 매체가 포털사이트에서 의지하는 형국이어서, 포털이 엄청난 횡포를 부린다. 하지만 언론노조는 포털에 대한 비판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한 때 언론노조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반감이 생겼다. 언론노조가 세운 자기들 아젠다 외의 문제는 철저히 무시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언론노조 활동은 서울 중심적” - 지역방송 교양PD

언론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로서 30년을 버텨줘서 아주 고맙고 대견하다. 아쉬운 점 중에서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여전히 존재하는 ‘주류 언론’ 또는 ‘언론 적폐’ 또는 ‘언론 관행’을 바꾸지 못한 게 아닐까. 부당하게 침해되는 언론자유를 지키는 것에도 벅찬 일이었지만 이제는 기존의 언론문법을 바꿀 수 있는 구심점의 하나로서 언론노조가 존재해야 한다.

여전히 언론노조의 활동이 서울 중심적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지방분권을 이야기 하면서도 지역 언론의 제자리 찾기에는 함께 하지 못한다. 물론 언론노조가 지역 언론사의 파업 현장이나 투쟁현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선제적인 방향제시나 법안마련에는 소홀하다. 지역 언론의 현 상황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지역 언론의 공익성과 공공성은 ‘생존’을 위해 소위 지역토호세력에게 저당 잡힌 지 오래다.

이런 지역 언론의 상황을 변화시키고 개선하기 위한 자정노력은 미약하다. 언론노조의 힘이 필요하다. 파편화된 각 지역 언론의 이해를 하나로 모으고 지역 언론 법안을 비롯해 여러 제도적 보완을 도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아가 지역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지난 2017년 9월18일 KBS본관 로비 민주광장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고대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2017년 9월18일 KBS본관 로비 민주광장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고대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작은 이슈라도 먼저 치고 나가줬으면” - 공영방송 라디오 PD

솔직히 언론노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한참 생각했다. 언론노조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지 일을 하면서 언론노조의 활동이나 역할을 체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언론노조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느껴지는 존재감이 작은 게 아쉽다.

큰 이슈가 생겨서 파업, 쟁의가 벌어질 때 언론노조가 제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터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자잘한 이슈에도 언론노조가 관심을 갖고 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시대정신에 어떤 직종보다 민감한 언론인들을 대표하는 언론노조라면 항상 날을 벼리고 작은 이슈라도 먼저 치고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투박하고 관성에 젖은 모습보다는 지금 시대에 맞는 섬세하고 세련된 활동을 기대한다.

“종편 구성원들 노조설립 지원하고 힘 됐으면” - JTBC 기자

2011년 언론노조는 종편 특혜 저지 투쟁을 벌였다. 당시의 투쟁은 정당했고 대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종편의 설립과정에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하지만 종편이 출범한지 벌써 6년이 지났고 그 사이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같은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뉴스나 보도프로그램의 논조도 많이 바뀌었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조롱의 대상이었던 막장 방송을 하던 프로그램도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종합편성채널 4개사 중에서 3개사는 노조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노조 설립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노조가 있는 회사도 기자들만의 반쪽 노조다.

언론노조가 종편 구성원들의 노조설립을 지원하고 힘이 됐으면 좋겠다. 매체는 다양해지고 언론업계 종사자 수는 늘고 근무형태는 다양해지는데 언론노조의 시계는 멈춰있는 것 같다.

“노동자로서의 삶의 질과 창작자로서의 자존심 지킬 수 있었으면” - 지상파 예능 PD

지난 10년이 언론자유와 ‘옳음’을 위해 싸워온 시간이라고 한다면, 이제 ‘노동조합’으로서 그 ‘옳음’에 부끄럽지 않은 노동을 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는 시간이다. 지난 10년 우리가 싸우는 동안 예능 제작 현장은 비정규직이 없으면 안 되는 곳이 되었다. 어느 프로그램을 가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PD가 많은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들 대부분은 언론노조에 가입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아 누구와 연대도 하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로 예능 제작현장의 가장 큰 축이 되었다. ‘노동조합’으로서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52시간 노동과 관련하여, ‘삶의 질’을 위한 고민과 ‘프로그램의 질’을 위한 고민이 엇갈리기 시작하는 순간들 또한 목격한다. 예능PD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조차 없는 삶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장시간 노동이 필수였던 제작 시스템 아래 만들어졌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하루아침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어느 조연출이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왜 갑자기 누군가 일을 정해서 하라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경쟁상대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독립 제작자들은 52시간 정해놓고 일하지 않는다’라며 탄식하는 이야기 또한 들었다.

방송 콘텐츠 제작은 전에 없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노동자로서의 삶의 질과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을 함께 지킬 수 있는, 나아가 언론방송업계의 생명력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 나갔으면 한다.

[ 관련기사 ]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① : 드라마제작사 PD, 인터넷신문 기자, 지역방송 교양PD, 공영방송 라디오 PD, JTBC 기자, 지상파 예능 PD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② : 전직 민영방송 노조위원장, 비정규 방송스태프, 독립제작사 조연출, 방송차량 운전노동자, 전직 언론노조 간부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③ : 경제지 기자, 언론노조 소속 신문기자, 방송작가, 전직 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 1988년 언론노련 조합원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④ : TV조선 기자, 1988년 입사한 신문기자, 언론노조 소속 방송기자, 非 언론노조 소속 종합일간지 기자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⑤ : 프리랜서 방송인, 여성계 인사, 언론사 입사 준비생,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언론노조 30년, 30개의 시선 ⑥ : 미디어기구 종사자, 전직 언론노조 활동가, 언론학자, 언론시민단체 활동가, 희망연대노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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