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동 KBS 사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KBS 지역총국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성폭력 피해 신고 대상자를 격리 처분하기 위한 규정의 맹점이 드러났다. 2년에 불과한 징계시효 등 사내 성폭력 가해자 처벌과 관련한 KBS 내부 규정 정비 필요성이 또 한 번 제기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19일 양 후보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오성일 KBS 인력관리실장을 불렀다. 지역총국에서의 성폭력 신고 이후 KBS가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을 상대적으로 편안하다고 인식돼 온 부서로 보냈다며 봐주기 조치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날 “원래는 바로 대기발령을 내고 사건 전모를 확인하는 절차가 우선 아닌가”라고 묻자 오 실장은 “회사 인사규정상 징계 요구 전까지는 대기발령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신속하게 격리 조치하는 과정에서 관련 부서 직원들의 정서가 민감하게 고려되지 못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은) 조사 이후 징계 요구가 됐고 결과에 따라 인사위원회 회부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무원 인사관리규정’에는 인사권자가 조사 과정에서부터 피해자와 가해자 근무지 분리 등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내 성희롱 예방 지침 가이드라인은 피해자 요청 시 즉시 피신고인 또는 행위자에게 개인휴가를 명하거나 대기발령을 요청하는 등 처분 권한 내에서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KBS는 현행 규정상 신고 만으로 피신고자 대기발령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KBS 인사규정에 따른 ‘대기’ 요건은 △형사사건으로 구속 기소되거나 직무와 연관된 비위행위를 한 경우 △형사사건으로 지명수배돼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징계요구 중인 자에 대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직제개편, 업무이관 등에 의해 보직을 받지 못한 경우 등이다.

피신고자 대기발령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봐주기’ 전보·발령 논란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관련 규정 보완이 필요하다. 이윤상 KBS 성평등센터장은 미디어오늘에 “대기발령이 어려워 전보 조치를 했다. 실제 전보 받은 곳에서도 피신고자가 근무를 하지는 않았고 휴가를 내는 방식으로 피·가해자 분리 조치를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후 어떤 식으로 분리 조치를 이행할 것인지는 검토 중이다. 자택 대기 등 방식을 추진하려 하는데 규정에 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KBS 사내 성폭력 처리와 연관되는 규정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년으로 제한된 징계시효가 대표적이다. 실제 KBS 감사실은 지난 2012년 성폭력 사건을 특별감사한 결과 “피해 사실 주장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정황상 사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음에도 징계시효가 명시된 사규로 인해 가해자에게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주의’ 처분을 하는 데 그쳤다.

이 센터장은 “징계시효 문제는 KBS 내에서도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있다”고 전한 뒤 “(징계시효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수 있는데 교섭대표노조가 없어서 근로자 동의를 구하는 방식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절차를 효율적으로 밟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센터장은 “기존의 성희롱 예방지침은 표준안 수준이라 더 세밀하게 다듬으면 좋을 것 같다.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으로 강화된 부분 등을 반영해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라며 “이것이 향후 성평등센터의 규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19일 인사청문회에서는 양 후보 공격을 위한 한국당 측의 ‘2차 가해성’ 질의가 이어졌다. 송희경 의원은 피해자가 공론화를 원하지 않은 과거 KBS 사내 성폭력 사례를 들추며 피해자 가족을 운운했다. 지난 3월 양 후보 인사청문회 당시 한국당은 양 후보의 사내 성폭력 은폐·무마 주장을 위해 이 사건을 언급했으나, 피해자 측은 사실이 아닌 오보로 2차 피해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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