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하고 가짜뉴스 담론이 떠오른 지 2년, 가짜뉴스 용어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언론과 학계에서 잇따른다. 개념이 그 자체로 자의에 기댈 수밖에 없고, 이 특성이 정치적 목적에 활용돼 규제 법안까지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뉴스, 가짜뉴스, 허위정보’를 주제로 원탁 토론회를 열었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와 팩트체크 전문매체 뉴스톱의 김준일 대표는 이날 ‘가짜뉴스’란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정과 대상이 애매모호해 합의에 이르기 어려울뿐더러 정략적 용도 외에 효용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학계는 대체로 가짜뉴스 요건을 3가지로 구성한다. △내용이 허위이고 △형식은 기사의 틀을 갖췄으며 △속이려는 의도로 만든 정보이다. 문제는 이들 기준 가운데 어느 하나 명확하게 판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김준일 대표는 “내용의 진위를 가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형식도 모두가 뉴스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시대에 어떤 것이 기사이고 아닌지 무 자르듯 판단하기 어렵다. 의도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추정할 뿐, 확증할 수 없다”고 했다.

▲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스, 가짜뉴스, 허위정보’ 주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스, 가짜뉴스, 허위정보’ 주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미국에서 당초 가리키는 정의에 들어맞는 가짜뉴스는 국내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른바 미국식 가짜뉴스는 가짜뉴스 전문 사이트가 만들어낸 정보를 가리키는데, 한국에는 ‘가짜언론 사이트’에서 생산한 가짜뉴스가 사실상 한 건도 없다. 김준일 대표는 “국내 대표 가짜뉴스로 태블릿 PC 조작설이나 5‧18 북한 특수군 설 등이 꼽힌다. 이들은 특정인이 반복 제기한 의혹이거나 시중 루머다”라고 했다.

이렇게 모호한 개념이 언론과 정치권에서 부상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가짜뉴스 개념을 만들고, 언론이 이를 이용했다고 했다.

황용석 교수는 “가짜뉴스는 언론이 아닌 정치인이 만든 프로파간다”라고 했다. 올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이같이 결론 내린 고위 전문가그룹(HLGE, A High-Level Group of Experts) 보고서를 인용했다. 정치권이 실질이 없는 용어를 이용해 정략 이익에 활용한다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가짜뉴스를 가장 빈번하게 쓰는 정치인은 트럼프 대통령인데, 사실 여부가 아닌 해석과 가치 판단을 두고 가짜뉴스라 규정한다”고 짚었다.

언론이 ‘가짜뉴스 담론’ 부상에 힘을 보탰다. 이른바 전통 언론이 ‘가짜뉴스’를 손가락질하면서 그 대척점에서 ‘진짜 언론’이자 팩트체크 기관을 자처해 입지를 다졌다는 설명이다. 김준일 대표는 “기존 언론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프레임으로 사안에 접근했다. 트럼프 당선을 예측하지 못하자 가짜뉴스란 변인을 과도하게 부각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스, 가짜뉴스, 허위정보’ 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스, 가짜뉴스, 허위정보’ 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문가들은 이 상황에서 가짜뉴스를 법률 규제하는 시도는 한계에 부딪힌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국회에는 ‘가짜뉴스 규제’를 표방하는 정보통신법 개정안이 쏟아져나왔다. 지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20건이 발의됐다. 황용석 교수는 “입법안은 가짜뉴스 개념 정의부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하나같이 국가기관이 정보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입법 명료성을 위해할 여지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가짜뉴스대책특별위원회를 발족한 뒤 명칭을 ‘허위정보조작’ 대책특위로 뒤늦게 변경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가짜뉴스를 규제하려는 시도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이달 초 프랑스 상원이 가짜뉴스 법안을 부결했다. 황 교수는 “범위를 선거기간으로 한정한 법안인데도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고 했다. 유럽위원회도 HLEG 보고서에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검열 형식은 명확히 피해야 하며, 자율규제와 팩트체크 등 비제도적 규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 법령은 이미 허위 표현을 다양하게 규제하고 있기도 하다. 황 교수는 “우리 법제는 총 56건의 법률 조항으로 ‘허위’ 가능성이 있는 표현을 규제해 사실상 가짜뉴스 법안은 정치적 표현물을 겨냥한다. 현재 이뤄지는 담론은 다양한 정치적 표현 자유를 놓고 정치권이 우위에 서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가짜뉴스를 대신할 개념으로 ‘허위정보’를 제시했다. 규정과 대상의 모호성을 없앤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자는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3일 ‘페이크뉴스’ 용어 사용을 금지하고 ‘허위 정보(mis-information)’와 ‘기만적 허위 정보(dis-inform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황 교수는 “최근 구글랩 써밋 등 해외 컨퍼런스들은 가짜뉴스란 단어를 ‘허위정보’와 ‘기만적 의미의 허위정보’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국식 가짜뉴스의 경우 외래어로 인용해 ‘페이크 뉴스(fake news)’라 부르자고 말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뉴스, 가짜뉴스, 허위정보’를 주제로 원탁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한국언론진흥재단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뉴스, 가짜뉴스, 허위정보’를 주제로 원탁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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