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설을 다룬 유튜브 영상 등이 ‘허위정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에 삭제를 요청했다. 경찰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허위정보로 간주한 경우도 확인됐다. 

복수의 방통심의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경찰이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을 다룬 ‘신의 한 수’ 유튜브 영상을 비롯한 16건의 콘텐츠 삭제를 방통심의위에 요청했고, 방통심의위의 자문기구인 통신권익보호특별위원회(통신특위)가 관련 논의를 했다.

삭제를 요청한 영상 중 유튜브채널 ‘신의 한 수’의 ‘문재인 치매설, 공개 건강검진으로 해명하라!’ 영상은 “송민순 회고록 관련 기억을 못하는 문재인”, “나라 이름도 잘 못 쓰는 문재인”, “세월호 관련 행사 방명록에 죽은 아이들에게 고맙지만 날짜도 모르는 문재인” 등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설을 주장했다.

▲ 유튜브 '신의 한 수' 영상 화면 갈무리.
▲ 유튜브 '신의 한 수' 영상 화면 갈무리.

‘문재인은 사실상 간첩이다’ 제목의 영상은 “국민들 대다수가 문재인을 간첩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은 노무현 살해자이기도 하다. 이명박의 옥중 조사거부도 문재인의 살인행위를 알기 때문이다” 등의 주장도 담았다.

고양 유류저장소 폭발 사건 관련 영상은 “북으로 보낸 정유를 은폐하고자 이번 유류저장창고를 일부러 폭파한 것 아닌가? 난 의심이 가는 것이 아니고 확실하다고 본다”는 음모론을 담았다.

경찰이 삭제 요청한 영상 가운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내용도 있다. ‘박근혜 탄핵은 청와대 내부 탄핵간첩 때문에 가능했다!’ 영상은 “청와대 내부에 탄핵음모에 깊숙이 개입해서 호응한 탄핵간첩이 있었다는 것이다. 탄핵은 외부에서 이미 방대하게 공모되고 준비되어 있었다” 등 탄핵 관련 음모론을 다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고 칩거 중이라는 수감 생활과 관련한 언론보도와 유사한 ‘산책 안하고 식사 남기고... 박근혜 전 대통령 독방 칩거’ 영상도 삭제요청 영상에 포함됐다. 경찰은 당시 법무부의 설명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며 허위정보라고 규정했다.

▲ '박근혜 탄핵은 청와대 내부 탄핵간첩 때문에 가능했다!' 영상 갈무리.
▲ '박근혜 탄핵은 청와대 내부 탄핵간첩 때문에 가능했다!' 영상 갈무리.

경찰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방송장악’을 주장하는 내용의 KBS 공영노조 성명을 인용한 영상의 삭제를 요청하며 ‘공영노조 사칭 성명’이라고 밝혔으나 뉴스타운 보도에 따르면 공영노조의 성명이 맞다. KBS에는 여러 노조가 있는데 공영노조는 보수적 성향의 간부 중심 소수노조다.

이밖에도 경찰이 삭제 요청한 게시글 가운데는 예멘 난민이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거나, 정부가 난민에 과도한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 담긴 글도 있다. 경찰은 해당 영상과 글이 통신심의규정 가운데 ‘사회질서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통신심의규정은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통신특위는 경찰이 제기한 ‘사회질서 위반’ 심의와 관련 모든 안건에 심의제재를 하지 않는 ‘해당 없음’을 자문 의견으로 제시했다. ‘사회 혼란’ 조항 자체가 모호한 데다 해당 정보가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정보로 볼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수감생활을 다룬 영상의 조회수는 30회가 채 되지 않았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지부장은 “민원인이 어떤 민원을 넣든 막을 수는 없지만 경찰청에서 대통령 심기 경호와 과잉 충성하는 식으로 무분별한 심의 요청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부가 가짜뉴스 대책을 발표한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며 “대통령 치매설과 같은 정보는 규제 필요성이 없다. 허위사실이더라도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한다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향후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원회가 정식 심의절차에 착수해 게시글 삭제시정요구 제재를 하면 이전 정부보다 과도한 조치를 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때 경찰은 사드, 메르스, 세월호 참사 등과 관련한 루머성 게시글을 삭제 요청한 전례가 있으나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을 삭제한 경우는 없었다.

특히, 통신심의 규정은 공인의 경우 당사자의 민원이 있을 때만 명예훼손 게시글을 심의하는데 사회혼란 조항으로 대통령 치매설을 심의하면 명예훼손 심의규정을 우회해 편법 소지도 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금준경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금준경 기자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에 대한 비난, 루머성 게시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5년 당사자 신고 없이도 명예훼손 게시글을 삭제하는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했다가 당시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심의위원들의 반발로 공인을 제외한 수정안이 통과됐다.

[관련기사: [단독] 제3자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은 박근혜 청와대 작품]

김준희 지부장은 “방통심의위는 관계기관에서 이첩되었다는 이유로 거수기처럼 삭제해주는 기구가 아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4기 방통심의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다만, 예멘 난민이나 혐오표현에 대한 인터넷 게시글의 경우 강력범죄로 이어질 우려도 있어 규제 필요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통신심의 규정에는 혐오표현 조항이 들어가 있다. 어떻게 운용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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