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유 직장문화를 반영한 ‘갑질지수’ 측정 지표가 처음으로 나왔다. 그간 만연했으나 주관에 기대 논했던 갑질의 ‘정도’를 양적으로 수치화한 잣대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회식문화 강요’나 ‘직장 내 괴롭힘’ 등 한국 직장문화에서 나타나는 갑질이 두드러졌다. 이들 갑질은 대부분이 현행 제도로 방지하거나 처벌하기 어렵다.

직장갑질119는 지난 1년 간 다양한 업종에서 접수한 갑질 제보 2만 2000여 건을 바탕으로 5개월에 걸쳐 표준 ‘직장갑질 지표’를 개발했다. 전문분야 학자 9명이 설계에 참여했다.

▲ 직장갑질 지표를 책임감수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19일 ‘2018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직장갑질 지표를 책임감수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19일 ‘2018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표는 10개 영역(△채용과정과 노동조건 △폭언‧폭행‧성희롱 △차별과 괴롭힘 △노동시간 △인사 문제 등)에서 총 68개 문항으로 꾸려진다. 직장인이 현재 다니는 조직상황을 0~100점 사이 5개 점수를 매겨 답하면, 이 결과를 취합해 평균값을 낸다. 이 지수가 100점에 가까울수록 업장에 갑질과 노동권 침해 행위가 심각하다고 본다.

문항은 한국 특유의 조직문화를 반영해 만들었다. 그 결과 △음주‧노래방 등 회식문화를 강요한다 △체육‧단합대회 등 비업무 행사를 강요한다 △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한다 등이 들어갔다. 직장갑질119는 “갑질 자체가 다른 나라에 없는 독특한 현상인 탓에 새로 지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 지표로 측정한 올해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는 35점이었다. 직장갑질119는 보도자료에서 “법을 지키는 정상 직장이라면 지수가 0점이며, 최소한 10점 미만이어야 불법행위나 갑질이 적다고 본다”고 했다.

▲ 직장갑질119는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를 발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직장갑질119는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를 발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수치가 심각한 갑질 항목은 현행법상 그 행위를 방지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권 변호사는 “40점을 넘어서는 항목이 17개인데, 이 가운데 10개는 현행법이 노동자를 갑질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고 했다.

‘취업정보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정보가 실제와 다르다’(47.1점)는 항목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권두섭 변호사는 “채용 시 허위 계약조건을 내세우면 규제 대상이다. 그러나 채용사이트 공고는 법규제 밖에 있어 계약조건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심각했다. 40점을 넘어선 항목 가운데 7가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했다. △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한다 △상사가 본인 일을 반복해 전가‧강요한다 △외모‧연령‧학력‧지역‧정규직 여부‧성별 등 이유로 차별한다 등이다.

외국계 대기업은 더 심각했다. 50점을 넘어선 갑질 항목이 12개였다. 여기에는 △비업무 행사 강요 △시간외 SNS 업무 지시 △직원 무시 발언 등 한국 조직문화에서 나타나는 갑질이 포함됐다. 갑질지수 책임감수를 맡은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유럽처럼 국제지침으로 노동권을 보호하는 나라에선 이를 준수하면서, 같은 제도를 갖추지 않은 한국에서는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을 확인했다. 제도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권두섭 직장갑질119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가 19일 ‘2018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권두섭 직장갑질119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가 19일 ‘2018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직장갑질119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 3법(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통과해야만 직장 내 문화에 변화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이들 법안이 형사처벌을 명시하진 않지만, 업무내용을 넘어서는 지속적 괴롭힘이 법적 조치 대상이라고 규정하면 상당한 근절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이날 ‘우리 회사 갑질지수 측정기’ 온라인 페이지를 공개했다. 이들은 “앞으로 개별 사업장이 갑질지수를 잴 때 2018년의 표본조사 결과를 참고해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사는 지난 8~12일까지 직장갑질119가 전문조사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업종과 고용형태별 20~2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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