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외면”, “과잉의 위력”, “난장판”, “괴물”, “경제 망치는 암적 존재”, “법 위에 군림”… 누구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최근 일주일 동안 기사 제목에서 ‘민주노총’을 지칭한 단어를 검색한 결과이다. 사법적폐로 인해 ‘노조아님’ 통보를 받았으나 아직도 노조 아닌 전교조를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하고, 고통받던 비정규직들이 모여서 제대로 정규직 전환을 하고 노조할 권리를 달라고 절규하는데 ‘군림’하고 ‘난장판’을 벌린 이들이 되었다. 무한 노동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는데 ‘암적 존재’가 되었다. 그야말로 ‘괴물을 만드는’ 언론이다.

그런데 민주노총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조중동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이 기사들의 결론은 “민주노총이 더 이상 투쟁만 하지 말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 정부가 청년과 비정규직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 민주노총은 정규직의 협소한 이익을 위해서 싸울 생각 하지 말고 청년과 비정규직을 위한 논의 테이블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 참여하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경사노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정말 그렇게 비난받을 일일까?

▲ 과로사 OUT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1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탄력적 근로 시간제 확대 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탄력근로시간제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과로사 OUT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1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탄력적 근로 시간제 확대 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탄력근로시간제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정부는 정말로 민주노총과 대화하고 싶었을까

11월 22일 경사노위는 민주노총 없이 공식 출범한다. 2018년 5월 ‘노사정위원회‘에서 명칭을 변경한 경사노위는 노동계와 사용자대표, 그리고 정부와 공익위원, 모두 18명의 위원들이 노동정책 및 산업·경제·사회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위 기사만 보면 민주노총이 어떤 논의기구에도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민주노총은 정부의 여러 위원회에서 여러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018년 1월 31일에 출범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여 사회적 대화의 정상화 방안과 의제에 대해 협의해왔다. 그런데 2018년 5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불참’을 선언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최저임금법을 일방적으로 개악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임금을 받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었기에 노동계는 수용할 수 없었다. 한편에서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일방적으로 노동개악을 관철시켰으니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노총은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으며,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의 논의를 남겨두고 있다.

대화가 꼭 ‘경사노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산별교섭을 제도화하자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와 재계가 제대로 반응한 적이 없다. 또한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은 노․정교섭을 제안했다. 노동기본권은 헌법상 권리이고 그것을 제약하는 법률과 시행령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면 되기 때문에 ‘노·사·정’이 만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노·사·정 대화’만을 고집했다. 사회적 대화 기구가 왜 꼭 ‘경사노위’여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는 아직 답하지 않고 있다.

▲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6월19일 오후 마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은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포함한 주요 안건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 사진=민중의소리
▲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6월19일 오후 마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은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포함한 주요 안건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 사진=민중의소리

경사노위는 청년과 비정규직을 위한 의제를 다루나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적 대화의 기본조건으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기본권 존중은 사회적 대화의 전제이며 주고받기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노동기본권이 주고받기 대상이 되고 있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혁위원회’는 ILO의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논의를 의제로 다루었다. 그 위원회의 공익위원 최종안은, 노동자의 단결권에 관한 입법사항은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다루고,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하여 노동기본권 제한을 논의하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경사노위는 출범하자마자 탄력근로제를 논의할 별도의 위원회 구성에 나섰으며, 이것이 첫번째 전체회의에서 심의될 안건이라고 한다. 여야정협의체에서 현행법상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겠다고 했고, 경총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초청 간담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경사노위는 연장근로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경사노위에는 청년과 비정규직을 위한 특별위원회도 설치된다. 아마도 거기에서 많은 정책이 논의될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정책에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재벌청부입법인 은산분리 등 규제완화법은 노동계가 반대해도 여야합의로 국회에서 처리되지만, 비정규직들의 절실한 요구인 ‘원청사용자 책임 제도화’ 등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민주노총이 강해서가 아니라 만만해서 공격하는 것

정부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서 일자리 문제 등 많은 문제를 결정하지 못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미 정부는 많은 것을 일방 처리했다. 최저임금법과 규제완화법도 일방 처리했지만, 소위 ‘광주형 일자리’도 민주노총이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라면서 비판하자 민주노총을 제외한 채 한국노총과 협약을 체결했다. 민주노총의 반대 때문에 정부가 실행하지 못한 정책은 없다.

그런데 왜 정부는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에 이토록 불만을 쏟아내는가? 그것은 ‘참여하여 함께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반대하지 말라’는 것으로 읽힌다.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사실상 폐기했고, 기업성과에 다시 의존하기 시작했다. 지지율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는 문재인정부로서는 노동정책의 우회전을 비판하는 민주노총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니 경사노위에 들어오게 해서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거나, 민주노총의 목소리를 ‘정규직의 이기주의’로 규정해서 무력하게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강해서가 아니라 만만해서다. 정규직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려고 강경투쟁을 한다는데, 정규직 조합원들은 오히려 투쟁에 시큰둥하다. 굳이 싸워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투쟁하는 이들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수당을 삭감당한 저임금노동자들, 탄력근로제로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게 되는 작은사업장 노동자들, 노조할 권리조차 갖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1월 12일부터 청와대, 대검찰청, 국회 앞에서 절규한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는데도, 정작 언론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생각하지 않고 강경투쟁을 한다’고 비판하니 왜곡된 렌즈로만 들여다보는 것 같다.

▲ 지난 7월13일 최저임금법 반대 서명지가 든 60여개 박스를 청와대에 전달하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7월13일 최저임금법 반대 서명지가 든 60여개 박스를 청와대에 전달하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사진=민중의소리

노동자의 삶과 재벌의 이익을 주고받기 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1998년 노사정위원회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수용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이 민주노총의 합법화였다. 재벌은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았고 비정규직 확대로 막대한 이익을 얻으며 지배력을 더욱 확대했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었지만 정리해고의 두려움을 알게 된 정규직들은 자신들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비정규직을 외면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청년들은 질 좋은 일자리가 없어 경쟁하고 절망한다. 비정규직은 더욱 늘었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이야기하는 지금,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다.

경사노위에 참여해서 양보하라고 민주노총에 요구한다. 이미 강행 처리된 최저임금 개악과 탄력근로시간제 외에 무엇을 더 내놓아야 하나? ‘광주형일자리’처럼 정규직들이 임금을 대폭 양보해야 하나? 양보한다고 치자. 그러면 정부는 노동자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전교조 합법화나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그것은 애초부터 주고받기 대상이 아니다. 기업은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이익공유제도 못하겠다고 하고, 하청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재벌이 무언가를 내놓기는 할까? 아니, 재벌에게 무언가를 내놓도록 강제할 힘과 의지는 있는가? 정규직의 양보가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과 청년노동자의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는 하는가?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묻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기업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갑질금지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직사회 비리척결을 위해 싸웠던 해직자들이 아직 현장에 돌아가지 못했다. 사법적폐로 탄압받고 해고된 이들은 아직 거리에 있다. 정규직 전환은 가짜였다고 외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기업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1년을 굴뚝에서 보내는 노동자들도 있다. 불법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노조를 탄압한 재벌총수들은 아직 처벌받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이 정부를 믿으라고 말할 수 있나?

‘비정규직’과 ‘청년’이 계속 호명되지만, 경사노위의 논의가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경사노위에 신뢰를 보내기에는 재벌의 기세가 등등하고 문재인정부의 공약은 허망하다. ‘노동존중’을 포기하고 재벌의 요구를 수용하는 경제정책을 선택해놓고 그것을 감추는 정부에 절망한다.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에 실망한다. 그 상황에서 비정규직들이 나서서 ‘절규’할 때 그것을 ‘난장판’이라고 표현하는 언론에 분노한다. ‘도로 절망의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 누가 나서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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