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삼우실’은 일명 ‘중고신입’(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온 신입) 주인공 조용히씨가 주식회사 대팔기획에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용히씨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꽃잎씨는 구 대표와 조 상무에게 업무시간이 지나도 “사무실 비밀번호가 뭐였지?”, “에이포 용지가 어디있지?”등의 쓸데없는 전화에 시달린다. 반면 퇴근한 용히씨는 전화를 꺼 버린지 오래다.

‘삼우실’은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직장갑질을 소재로 한 픽션으로 시작해 최근에는 독자들의 사연을 받으면서 실화를 다루기도 한다. 독자의 사연 중 상사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해서 갔더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라고 했다는 일화, 상사가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고 와서 땀 묻은 수건을 빨라달라는 일화 등 황당한 사연이 넘쳐난다. ‘삼우실’ 인스타그램 계정(@3woosil)엔 기상천외한 갑질을 겪은 이들의 분노와 공감이 쏟아진다. 그 덕분에 이 계정은 인스타그램 14만 팔로워를 이끌고 있으며 인기에 힘을 얻어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 웹툰 '삼우실'의 에피소드.
▲ 웹툰 '삼우실'의 에피소드. 왼쪽의 상사는 구 대표, 오른쪽의 상사는 조 상무. 
이 웹툰을 만든 사람들은 CBS 디지털미디어센터의 김효은 기자와 강인경 디자이너다. 김 기자는 2008년 CBS에 입사한 11년차 기자다. 2010년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룬 기사로 한국기자상과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받은 적 있고, 회사에서 최초로 생리휴가를 낸 기자라고 한다. 2017년부터 디지털미디어센터로 옮겨와 웹툰을 만들게 됐다. 미디어오늘은 8일 김효은 CBS 디지털미디어센터 기자를 만나 왜 웹툰을 그리게 됐는지 물었다.

김 기자는 “디지털미디어센터가 만들어지기 전 SNS팀에 있었고 카드뉴스를 만드는 일 등을 했는데 당시에도 ‘노키즈 존’에 대한 짧은 만화나 성추행 사연 등을 만화로 만든 적 있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만 10만명이 넘게 그 만화를 봤고 이런 방식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됐고 웹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삼우실’이라는 제목은 ‘오늘 뭐하지’, ‘점심 뭐 먹지’, ‘퇴근해야 하는데 지금 몇시지’라는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3가지 고민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콘티는 김 기자가 직접 그리고, CBS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입사한 강인경 디자이너가 그림을 그린다. 일주일에 두 번 웹툰이 올라온다.

▲ 웹툰 '삼우실'의 한 컷.
▲ 웹툰 '삼우실'의 한 컷.
▲ 김효은 기자가 그린 콘티와 그 콘티가 강인경 디자이너에 의해 웹툰으로 완성된 모습.
▲ 김효은 기자가 그린 콘티와 그 콘티가 강인경 디자이너에 의해 웹툰으로 완성된 모습. 사진제공=김효은 기자.
김 기자는 이전에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라는 웹툰을 즐겨봤다고 한다. 이 웹툰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플랫폼으로 사용해 대성공을 거뒀다. 기존의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나 다음, 레진코믹스 등을 거치지 않고 성공한 사례여서 김 기자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관련 콘텐츠들을 찾아봤는데 신입들이 당하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일화가 많았다. 그래서 ‘중고신입’이라는 모티브를 넣어 일명 ‘사이다’(막힌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역할)같은 설정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험과 지인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다.”

사실 웹툰에 나오는 조용히씨는 중고신입이기도 하고 ‘사이다’ 컨셉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직장갑질이나 무례한 상사의 질문에도 곧잘 받아치고, 오히려 그들을 골탕 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렇지 못한다. 김 기자는 용히씨같은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조용히’처럼 회사 다니면 잘린다는 댓글도 있다. 그리고 ‘저렇게 다니니까 월급 적은 데 다니지’와 같은 의견도 봤다. 모두 소중한 의견이다. 지금은 어쩌면 조용히씨 같은 사람이 있으면 ‘쟤 왜저래?’라는 시선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도 조용히, 저기도 조용히 같은 사람이 생기면 ‘쟤도 저러네?’, ‘저런 애들이 왜 이렇게 많지?’라고 생각할 거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히 같이, 찍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삼우실’ 웹툰과 김 기자의 짧은 에세이가 어우러진 책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은 직장갑질을 다룬 웹툰을 보는 느낌과는 또 다르다. 김 기자가 겪은 사무실 이야기, 즉 한국 언론에 대한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김 기자가 신입시절 택시비로 월급을 몽땅 쓴 이야기, 수습 생활을 하며 겪은 잘못된 문화를 자신도 후배들에게 그대로 했다며 반성하는 이야기, 문화부만 출입하던 여성 기자 선배의 이야기로 풀어낸 언론사 내 여성 기자 차별에 대한 이야기 등 직장으로서의 언론사 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추가된다. 

김 기자에게 싸인을 부탁했다. 김 기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써줬다. “정시 퇴근하세요.”

▲ 김효은 기자와 강인경 디자이너의 사인이 담긴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 책.
▲ 김효은 기자와 강인경 디자이너의 사인이 담긴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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