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돌연 사퇴한 배경을 두고 정부가 집요하게 사퇴압박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반면 원자력연구원장 인사권자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측은 본인이 판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원자력연구원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하재주 원장은 14일 저녁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미정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대외협력부장은 15일 통화에서 “사직서를 어제 저녁에 제출했다. 임원선임 담당부서에서 전달받았다. 내용은 어제저녁 오후부로 접수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원자력연구원 내에도 오후부터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황순권 원자력연구원 미디어소통팀장은 “어제 사퇴의사를 밝혔고, 20일 오후 2시에 이임식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퇴 사유와 관련해 황 팀장은 하재주 원장이 사내 인사들에게 “잘 마무리 하고 떠났으면 좋겠는데, 내 시간이 여기까지인 것 같다”,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떠나게 돼서 아쉽다. 내 소임은 여기까지”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발언 만으로만 보면 본인은 더 마무리하고 싶은데 뭔가의 이유로 이번에 그만두게 된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사진=연합뉴스
▲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사진=연합뉴스
노조는 아예 정부가 사퇴압박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한국원자력연구원지부(지부장 김경호)는 14일 성명에서 “최근 정부는 명확한 사유나 공식적 의견 표명 없이,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우리 연구원 원장 사퇴를 집요히 강요하고 있다”며 “이는 점차 현실화 되는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을 가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또다시 우리 연구원을 흔들어 국민의 뜻과 목소리를 외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지부는 “연구원과 임단협 교섭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원장 사퇴를 압박함으로 헌법에서 보장된 우리의 정당한 노동권리를 어떤 형태라도 침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총 단결하여 현 정부의 독단적 권력횡포에 결연히 저항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지부는 하 원장이 받았다는 외압의 실체는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김경호 지부장은 15일 “하 원장의 핵심 간부들한테서 ‘정무적 판단으로 (그만두라 해서) 그만둔 것’이라고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김 지부장은 하 원장이나 하 원장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윗선’에게 들었거나 윗선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평가가 잘못 나왔거나 문제를 일으켰다면 책임을 통감하고 그만둘 수 있으나 (그만두라는 압력에) 연구자들이 담력도 크지 않고, 버티다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면 소모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임직원만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렇다해도 사퇴압력을 행사했다면 정확히 확인하고 주장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김 지부장은 “간부들한테 듣고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원자력계의 이해관계에 따른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의문에 김 지부장은 “에너지는 안보로 생각해야 한다. 정파간에 다룰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갖고 연구하고 이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지, 이익단체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하재주 원장 스스로 판단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정미정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대외협력부장은 “본인 스스로 결정한 사퇴 의사를 정부 개입이나 다른 외압인 것처럼 언급한 것은 무리가 있지 않느냐”며 “하 원장 본인의 판단이라고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인사권자 입장에서 유감스럽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정 부장은 “개별 이슈, 폐기물 운반, 스마트 원자로 연구, 감사선임과 같은 소통문제 등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책임을 느끼고 사퇴를 결심하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것 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하 원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으로, 원자력연구원의 본부장과 소장 등을 거쳐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OECD NEA)의 원자력개발국장을 하다가 원자력연구원장에 지원해 원장이 됐다. 

하 원장은 본인 재임 전 있었던 원자력연구원의 방사성폐기물 무단 절취 및 투기 사건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받자 국가행정심판청구를 했다가 최근 기각 결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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