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사무처가 일본 식민 통치의 상징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던 ‘가이즈카 향나무’를 국회 본청 주변 5그루만 제거했다.

속설에 따르면 가이즈카 향나무는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9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대한제국 황제 순종과 함께 기념식수 1호로 심으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에선 ‘조선침탈의 상징’인 가이즈카 향나무를 사적지에 심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국회에 [국회 본청 일본산 수종 변경에 관한 청원]을 제출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상징하는 장소인 국회가 가이즈카 향나무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국회사무처는 올해도 국회에 심어진 가이즈카 향나무를 전통 수종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자 연말까지 국회 본청을 둘러싼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부터 우선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뒤편에 심어진 ‘가이즈카 향나무’. 사진=강성원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뒤편에 심어진 ‘가이즈카 향나무’. 사진=강성원 기자
그런데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이후 국회가 실제로 제거한 가이즈카 향나무는 전체 123그루 중에서 5그루에 불과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8월30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회의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승기 운영위 수석전문위원은 국회 소관 결산 보고에서 “국회에 아직도 일본의 잔재인 가이즈카 향나무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자긍심을 떨어뜨리는 등 문제가 많다는 지적으로 ‘국회사무처는 국회 본청 주변의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를 우선 제거하고 소나무와 같은 우리 전통 수종으로 대체할 것’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김수흥 국회사무처 사무차장도 “사무처에서는 본관 주변에 있는 5그루의 가이즈카 향나무를 다른 데로 이식하도록 하겠고, 나머지 향나무 교체에 대해서도 예산을 확보해서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청사 내에 남아있는 가이즈카 향나무를 모두 교체하는 비용과 관련해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약 20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2년 사업으로 하면 1차 연도엔 한 6억~7억 정도가 소요되나 전체 123그루를 이식하고 조경 등 사업까지 같이했을 때 그 정도”라고 설명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뒤편에 일제 잔재 논란을 일으킨 ‘가이즈카 향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사진=강성원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뒤편에 일제 잔재 논란을 일으킨 ‘가이즈카 향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사진=강성원 기자
앞서 지난 2013년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국립현충원 내에 심어진 가이즈카 나무를 뽑자는 청원을 낸 후 2014년 국회는 이 청원을 받아들여 현충원 내 가이즈카와 노무라 단풍 등 일본 수종 제거를 위해 예산 30억원을 배정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문화재제자리찾기와 국회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 제거 청원을 제출하면서 “우리나라 각 지역 고유의 나무를 기증받아 가이즈카 향나무를 대체하는 방법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편 가이즈카 향나무와 관련해선 일본 특산종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 등은 지난해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지 ‘정신문화연구’에 게재한 [일제강점기의 가이즈카 향나무의 실체] 논문에서 “‘가이즈카 향나무는 이토가 좋아하는 나무이며 기념식수 됐다’는 주장은 허구”라고 반박했다.

김 교수 등은 논문에서 “현존하는 달성의 가이즈카 향나무 노거수 두 그루와 순종과 이토 기념식수는 어떤 관련성도 찾을 수 없었다”며 “기념식수에 이용된 나무가 가이즈카 향나무라는 근거는 없었고, 이 나무의 실체는 한국인의 민족 식물 향나무 그 자체인 것으로 결론 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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