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오는 21일경 대규모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통합과 슬림화’를 기조로 유사 기능은 모으고 불필요한 기능과 사업은 과감하게 포기한다는 방침이다. 조직개편 이후 성과 중심 보상 제도를 재편하는 한편 사상 최대 규모의 명예퇴직을 단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대규모 적자 경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MBC가 최승호 사장 취임 1년을 앞두고 자구책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MBC는 지난 8일 사내 게시판에 ‘콘텐츠 중심의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의 재도약을 준비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조직개편 계획을 알렸다. MBC는 “새로운 조직과 인사제도 도입과 함께 전략과제들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겠다”며 “고통스럽지만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실시하겠다. 이를 통해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내주 조직개편으로 MBC는 최 사장 취임 직후 드라마·예능·시사교양·라디오 등 제작 관련 본부를 사장 직속으로 뒀던 체제에서 벗어나, 김영희 콘텐츠 총괄 부사장과 변창립 운영 총괄 부사장이 각각 유관 본부를 총괄하는 ‘투톱’ 체제로 변화할 전망이다. 사장 직속으로는 기존 기획조정본부와 신설될 미래전략편성본부가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논의단계에 있는 초안에 따르면 김영희 부사장 아래 콘텐츠시너지국과 콘텐츠사업국, 드라마·예능·시사교양·라디오 등 제작본부를 둘 것으로 보인다. 변 부사장은 보도·경영·방송인프라본부와 아나운서국·통일협력실·시청자심의실·사회공헌실 등을 총괄한다. 뉴미디어뉴스 관련 부서는 보도국 아래 디지털뉴스에디터 소관으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조직의 틀이 변하면서 대규모 인사이동이 예상된다. MBC는 전사적인 업무 현황 조사·분석을 기반으로 10년 동안 불필요하게 확대된 조직과 방만하게 운용된 인력을 손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사 평가를 통해 기여도가 높은 인재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보상 제도로 격려하고 업무 성과가 낮고 공영방송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인력들은 재교육을 거쳐 업무를 재배치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MBC는 조직개편 직후 명예퇴직을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MBC는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명예퇴직은 직원들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한 뒤 “회사에는 미래 경쟁력을 위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더 젊고, 더 역동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능희 MBC 기획편성본부장은 앞서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에서 “SBS와 비교했더니 MBC가 124% 정도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며 “MBC에 한시 파견직까지 2300명 정도가 있는데 2011년에 2000명 정도였다. 300명 정도 늘었다. 인원이 많이 늘어난 원인을 찾고 있는데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MBC 노사 관계자들은 아직 구체적인 명예퇴직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조직개편이 확정되고 업무 재배치가 완료된 뒤 대상과 보상 관련 논의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규모의 명예퇴직이 이뤄진 때는 IMF 위기가 닥친 1998년으로 당시 명예퇴직 인원은 MBC 본사 및 전국 지방사를 합쳐 950여 명, 본사 소속만 300여 명에 달했다. 가장 최근 명예퇴직은 안광한 사장 시절인 지난 2015년 20년 이상 근속자 혹은 50세 이상 직원 중 잔여 정년 3년 이상의 미보직자를 대상으로 했다. 2005년, 2007년, 2009년의 경우 10년 이상 근속자 가운데 잔여 정년 기준을 충족하는 직원으로부터 명예퇴직을 신청 받았다.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이 알려진 뒤 MBC 내부 구성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PD는 “MBC 전체를 봐서는 군살을 빼고 방만했던 10년을 재편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변화된 환경에서 MBC가 이런 식으로 가서는 침몰한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며 “회사는 매번 명예퇴직을 할 때마다 고강도라고 얘기한다. 명예퇴직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발적으로 나가는 것이지 몇 명을 정해서 나가라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전했다.

한 기자는 “조직개편안 논의나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다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 하는 사람, 일 안 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는 불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조직개편이나 구조조정이) 회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건비 비중이 큰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 사장 취임 후 이어진 조직 및 인사개편에 피로도가 누적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직원은 “각자 관심사와 가까운 분야에 정착해야 애착을 가지고 다닐 텐데 어차피 떠날 생각을 하니 잠깐 버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라고 물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인사이동 불안함을 느끼기에도 너무 잔뼈가 굵어진 것 같다”고 했다.

MBC가 현실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숙원으로 여기는 중간광고 규제 등 이른바 ‘비대칭 규제 완화’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각 사들에 경영 위기 타개 등을 위한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MBC가 게시판을 통해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것은 사내외 모두를 향한 신호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이다.

교섭대표 노조인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MBC본부) 측은 아직 사측에서 공식으로 조직개편안을 전달받지 않았다며, 확정된 안이 오면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MBC본부는 앞선 노보에서 “(MBC는) 지상파 독과점 시대의 조직 구조가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본부 체제를 중심으로 한 조직도 상 칸막이 조직이 비대하다. 관성적으로 구획된 각 본부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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