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산업 활성화와 균형발전을 위한 방송광고 정책방향.’ 지난 9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보고안건 이름이다. 이날 발표한 정책과제 가운데 ‘협찬제도 개선’은 법 개정이 필요한 국회 소관이고, ‘미디어렙 제도개선’은 중장기 과제인 데다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모니터링 강화’ 등 시청권 침해 보완 방안은 실효성 있는 조치가 아니다. 다양한 광고정책을 종합해 발표하면서 거창한 이름을 지었지만 결국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을 위한 들러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방통위는 △지상파 광고 매출이 급감했고 △본래 지상파에도 허용됐던 중간광고가 1973년 오일쇼크를 계기로 임시로 중단된 것이고 △중간광고가 지상파에만 금지된 현실이 차별적이기에 공정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고 △넷플릭스 등 해외미디어 진출에 따라 국내 콘텐츠 사업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고 △지역방송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등의 이유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글로벌 미디어 시장의 콘텐츠 경쟁력 확보와 한류 확산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 지상파 3사 사옥.
▲ 지상파 3사 사옥.

그러나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방통위 상임위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방통위는 추진한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지 정하지 않았다. 양한열 방송기반국장은 9일 브리핑에서 “전면 도입인지 부분 도입인지 결정된 건 없고 추후 위원 간 논의와 의견수렴으로 정할 방침”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반발이 이어질 경우 지상파 중간광고 ‘부분 도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료방송채널과 같은 조건인 45분 이상 방송에 최대 6회까지 편성 가능한 중간광고 방식일 경우 중간광고에 따른 연 매출은 869억 원으로 전망된다. 반면 제한적으로 오락 장르에 한해 최대 2회까지만 허용하면 매출은 250억 원에 그쳐 지상파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현재 지상파에서 편법적인 유사 중간광고(PCM)를 편성하고 있어 실제 추가 매출 규모는 더 줄어들 수도 있다.

국회 논의 가능성도 변수다. 지난 9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추천 김석진 상임위원이 국회에서 중간광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부 추천 고삼석 상임위원은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가 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당장 13일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며 국회 논의를 요구하며 방통위를 압박하고 나섰다.

국회에서 중간광고를 논의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고 여당 내에서도 변재일 의원 등이 ‘신중론’을 펴고 있어 방통위로서는 곤혹스러워진다. 물론 중간광고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사항으로 행정부인 방통위 권한이지만 19대 국회 때 미래창조과학부 소관인 주파수 배분을 국회가 주파수소위원회를 만들어 재논의한 뒤 지상파 UHD를 도입한 전례가 있다.

업계 반발도 거세다. 직·간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종합편성채널 겸영 신문을 중심으로 한 신문업계는 중간광고 도입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여론전을 펴면서 지상파 중간광고의 효과를 낮추거나 신문업계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발표 직전부터 종편 겸영 신문인 중앙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는 도입 비판 기사를 쏟아냈고, 도입 결정 이후에는 한국신문협회가 반발 성명을 내자 13일 20여개 일간지가 지면을 통해 협회 주장을 받아썼다.

[관련기사: 중간광고 보도, 뉴스의 탈을 쓴 ‘밥그릇’ 싸움]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케이블 등 유료방송채널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지상파가 중간광고가 가능한 유료방송채널을 겸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지상파가 자회사인 계열PP를 통해 전체 방송광고 시장 매출의 53.8%를 점유하고 있기에 경영 악화 타개를 위해 중간광고를 통해 광고 매출을 더 올리겠다는 지상파의 주장은 명분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여론이 지상파의 편이 아니다. 지난달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지상파 중간광고 ‘반대’ 응답이 60.9%로 ‘찬성’(30.1%)의 2배로 나타났고 신문이 이를 적극적으로 인용하는 점은 부담이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광고를 늘린다는 내용으로 여론조사를 하면 누가 찬성하겠나”라고 지적했는데, 일리 있지만 여론이 부정적인 건 분명하다.

지상파의 약한 고리는 ‘방만 경영’과 ‘시청권 침해’ 프레임이다. 지상파는 ‘구조개혁’을 통해 방만 경영 비판을 극복하고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강조하며 대응하고 있다.

지난 8월 KBS는 개혁 중간보고를 통해 상위직급 축소, 경직된 직급체계 유연화 등 방안을 발표했다. MBC는 지난 8일 희망퇴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앞서 한국방송협회는 지난 9월 성명을 내고 중간광고를 통한 추가재원 확보로 △외주환경, 스태프 노동환경 개선에 노력하고 △프로그램 수출 확대, 유통 플랫폼 다변화를 통한 다양한 재원 확보 노력도 병행하며 △사회를 견인하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지상파가 내건 공약과 방통위가 공개한 과제를 보면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이후 시청자 입장에서 어떤 혜택이 오는지 분명하지 않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상파측에선 ‘이미 중간광고 도입 시기가 늦어 언 발에 오줌누기’라고 하면서도 도입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지상파는 중간광고 재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쓸 건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중간광고를 허용하면 프로그램 내에 이뤄지는 가상광고, 간접광고 규제완화를 비롯해 협찬에 대한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런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중간광고만 도입한다는 건 명분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 KBS 드라마 '다 잘될거야' 화면 갈무리. 과도한 간접광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지상파의 지나친 간접광고 현실을 드러낸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KBS 드라마 '다 잘될거야' 화면 갈무리. 과도한 간접광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지상파의 지나친 간접광고 현실을 드러낸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2년 전인 2016년 10월 한국PD연합회는 지상파 PD 85.3%가 “협찬과 간접광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광고를 해용해야 한다”고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이용석 SBS 드라마 PD는 “가장 큰 문제는 현재 드라마와 광고가 분리되지 않은 것”이라며 중간광고는 프로그램의 줄거리에 침투하는 광고보다 시청권 침해 요소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중간광고 도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지상파 종사자들 사이에서 이번 계기를 통해 협찬과 간접광고를 줄이자는 공개적인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상파의 자구노력 등 대책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도입부터 추진하는 방통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방통위 정책을 보면 중간광고를 풀겠다는 건 확실한데 다른 정책 과제들은 모호하다”며 “중간광고 도입이 시급했기에 시간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4기 방통위 출범 후 1년 동안 시간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비대칭 구조가 말이 안 된다면 종편에 중간광고를 금지를 할 수 있다”며 “종편 중간광고 금지는 힘드니 시청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그동안 방통위의 잘못된 정책으로 지상파의 존립이 어려워졌는데 왜 방통위는 사과조차 하지 않고 시민들이 책임을 져야 하나. 누가 이 구조를 만들었나”라고 반문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