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미투’ 국면에서 한국사회 곳곳의 인권문제를 화두로 꺼냈던 언론사들이 정작 반인권적인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언론사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기자들은 강압적 술 문화와 출입처 영업지시, 성희롱, 학벌 편견, 신입기자 괴롭히기, 군대식 서열문화 등을 주요한 구태로 꼬집고 있다.

문화일보 기자 A씨는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상당수의 언론사가 하리꼬미(밤새 경찰서를 돌며 취재한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를 폐지했지만, 회사는 하리꼬미를 폐지하지 않았다. 지난 11일 수습기자들은 고량주를 섞은 폭탄주를 14잔 이상 마셨다”고 토로했다. 하리꼬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이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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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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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기자 B씨는 당연하다는 듯 출입처에서 영업하는 선배들에 놀랐다. B씨는 “회사가 신입사원들에게 문화일보는 ‘밤의 조선일보’라면서 석간부수 확장 그래프를 보여주고 부수 확장이 목표라고 설명했다”고 전한 뒤 “사내 CMS(기사송고 시스템)에 경찰청에서 문화일보 구독을 100부 줄이겠다는 보고, 건강보험공단에서 200부 부수를 늘렸다는 보고를 보며 충격 받았다”고 말했다.

구태의 중심엔 학벌이 있다. B씨는 “너희 선배 중에 ○○대도 있다며 낮은 학교를 위한 쿼터가 있다고 말했다. 해머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보통은 그런 말 하는 걸 실례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설령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해도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여기는 달랐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경험이 누적되다보면 퇴사로 이어진다.

입사 첫날 폭탄주를 30잔 이상 말아 마셨다는 전직 문화일보 기자 C씨는 “동기들을 비롯해 위아래 기수 입사자 다수가 나갔다. 퇴사할 때 강압적인 술 문화를 비롯한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인사담당자는 아무리 편집국에 이야기해도 강압적인 문화가 고쳐지지 않는다고 오히려 나에게 토로했다”고 말했다.

구태적인 조직문화는 비단 문화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경제TV와 머니투데이방송(MTN)의 전·현직 기자들에 따르면 수습기자들을 대상으로 모든 기수가 대면식을 진행하는데 대면식 시작 전 수습기자는 현재 사는 집 주소와 부모님이나 보호자 연락처를 선배에게 제출해야 한다. 술을 먹고 정신을 잃고 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기자들은 성희롱 문제도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복수의 경제방송 여기자들은 술자리에서 부장급 이상 고위임원들에게 “내 옆에 앉아라, 분위기 깨지 말고”라는 발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경제방송 기자 D씨는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국장부터 임원진이 모두 있는 자리였다. 중압감이 느껴졌고, 아직도 그때 일이 마음속에 한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방송 기자 E씨는 “정말 더러운 일이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은 기수대면식 때 개인당 15분씩 이뤄지는 청문회 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꼬집는다. 한국경제 기자 F씨는 “신입 기자 10명이 입사하면 그 친구들을 데리고 기수마다 대면식을 진행하는데, 신입 기자들은 선배들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매번 업데이트해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한 사람당 15분씩 청문회 비슷하게 진행되는데 인신공격까지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입사한 한국경제신문 여성기자들은 기수대면식 날 대부분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채널A 전·현직 기자들은 일부 선배 기자들이 수습기자들에게 화장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했다. 채널A 기자 G씨는 “사내 지침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화장하면 선배들이 뭐라고 한다. 눈 화장이나 색조 화장은 정말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채널A 기자 H씨는 “한 선배가 화장하고 옷 예쁘게 입고 온 동료 기자에게 기상캐스터 같이 입고 다닌다는 말을 했다. 바로 개인톡을 보내고 아무도 없는 휴게실로 불러서 혼냈다. 거기서 그치면 좋은데 말이 돈다. 군기가 빠졌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닌다”고 전했다. 채널A 전직 기자인 I씨는 선배들에게 “화장할 정신이 있느냐, 씻는 것도 못 할 텐데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불쌍하고 없어 보이게 하고 다녀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MBN 기자 J씨는 군대의 ‘다나까’문화도 구태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J씨는 “수습기자 하리꼬미 교육 시절 ‘네, 했어요’로 대답했다가 선배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번 전화 때 ‘네’는 ‘맞습니다’, ‘못 들었어요’는 ‘잘 못 들었습니다’로 답했더니 전화를 끊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언론사 내부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만든다는 지적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대부분 최근 1~2년 사이 벌어진 사건들이다.

미디어오늘은 이들 회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김병직 문화일보 편집국장에게 13일 통화를 시도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하영춘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에게도 지난달 30일부터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오연근 한국경제TV 보도본부장은 지난달 30일 통화에서 “이 일에 대해 파악을 해보겠지만 우리 회사 일이 아닐 거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채널A는 내부 공식 절차를 거쳐 답변을 주겠다고 설명했다.

정연우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선배는 후배에게 술을 사주고 후배는 선배에게 맹목적 복종을 하는 문화가 계속해서 존재한다. 입사 후 도제식 교육을 받는 권위적인 문화가 청산되지 않고 언론계에서 그대로 이어져 왔지만 정작 언론사 내부문화는 제대로 지적받은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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