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몰염치한 이익집단이자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위기를 자초했다”

“오늘의 민노총은 특권노동자 중심의 권력 노조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민노총은 이제 국내외 정세를 바라보고 자신의 노동철학과 운동노선을 바꿔 나가야 한다”

지난 2005년 2월 1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과 조합원이 단상을 점거해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난 후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사설로 민주노총을 맹비난했다.

당시 갈등을 빚은 원인은 노사정위원회 복귀 여부였다.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을 통해 조직을 위상을 회복하자며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대파는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이 파탄나 들러리가 될 수 없다며 위원회 복귀를 반대했고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물리적 충돌은 언론의 먹잇감이 됐다. 당시 신문엔 폭력 난동이라고 활자화된 제목이 부지기수였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어떤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는지 관심은 뒷전으로 밀리고 노-노 갈등을 부추겨 민주노총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13년이 지난 지금 보수 언론의 보도가 바뀐 게 있다면 갈등의 주체가 정부·여당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을 생떼를 부리는 이기적인 조직 집단으로 몰아간다. 노동계 편이었던 정부·여당조차도 거리를 두고 비판적 입장으로 돌아섰기에 민주노총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언론 보도의 흐름은 지난 5일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보완입법 조치를 마무리한다”, “일자리 창출과 노사간 새로운 협력모델인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적 정착을 초당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에 합의하면서 뚜렷해졌다.

다음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자 언론은 일제히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도입, 쌍용차 해고자 복직뿐만 아니라 각종 정부 산하기관 요직에 전·현직 간부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등 많은 이득을 챙겼다. 오죽했으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도 최근 ‘민노총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을까"라고 썼다. 임 실장의 발언이 곧바로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무기로 사용된 셈이다.

12일자 조선일보의 “‘노조 출신 홍영표, 왜 우리 안 챙기나’”라는 제목의 기사는 정부·여당과 민주노총의 갈등을 부각시킨 종합판이다.

조선은 한국지엠 조합원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한 사실만 전했다. 그리고 이어 “지금 여권 내에선 ‘민주노총이 정부 정책 기조까지 흔들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불만이 누적돼 있다”고 보도했다. 덧붙여 임종석 비서실장의 발언, “책임있는 경제 주체의 모습이 아니다”는 홍영표 원내대표의 발언, “경제가 어려운데 노동계가 총파업까지 한다면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을 모아 전했다.

조선은 “그럼에도 섣불리 민주노총을 제압하겠다고 나설 수 없는 게 여권의 고민”이라며 노동계를 적으로 돌리기 어렵고, 힘의 우위가 민주노총에 있어 정부‧여당도 끌려가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이어 동아도 13일자 신문에 “투자 문턱 자꾸만 높여...노동계에 휘둘리는 ‘광주형 일자리’”, “민노총, 규제혁신 발목잡아...靑 내부 ‘더 밀려선 안돼’”라는 제목의 기사를 채웠다.

▲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2018 비정규직 철폐 전국 노동자대회'에 모인 노동자들. 민주노총은 이날 전국 각지 조합원 8만 명(경찰 추산 4만 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2018 비정규직 철폐 전국 노동자대회'에 모인 노동자들. 민주노총은 이날 전국 각지 조합원 8만 명(경찰 추산 4만 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 사진=노컷뉴스

정부·여당과 민주노총의 갈등의 정점을 찍은 보도는 지난 12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다. 홍 원내대표가 민주노총을 향해 쏟아낸 발언은 ‘폭발’, ‘작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됐다.

홍 원내대표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해서 뭐가 되는 곳이 아니다. 항상 폭력적 방식이고 자기들 생각을 100% 강요하려 한다”며 “나도 (대화할)방법이 없다. 말이 안 통한다. 너무 일방적”이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한국지엠 조합원들이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한 것에 대해서도 “폭력을 잘 쓴다. 최근에도 사장을 감금해서 난리가 났는데 미국 같은 나라에선 감금은 테러”라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은 “‘말 안 통해’ 민노총에 폭발한 文정부”다.

홍 원내대표의 발언을 文정부의 인식과 동일하게 보이는 것처럼 제목으로 단 것도 문제지만 기사 본문에서 최소한도 민주노총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홍영표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군산공장 폐쇄 이후 3천명의 조합원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고 임금인상과 성과급을 포기하는 등 고통분담을 해왔는데 지엠이 연말까지 생산부와 연구개발부 법인을 분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군산공장 폐쇄에 이어 부평공장 폐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당시 노사 합의 중재자로 나섰다.

한국지엠지부는 2일자 성명에서 “홍영표 의원은 지난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와 구조조정과정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노동조합에 수차례 약속했다. 하지만 홍영표 의원은 GM의 부도 협박에 대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조합을 협박하고 노동조합에 양보와 단체협약 합의를 압박했다”며 면담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점거에 나섰다.

정부‧여당과 민주노총이 고용노동정책을 놓고 줄다리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촛불국면에서 ‘원팀’이었던 노동계가 정부 출범 후 ‘계산서’를 내밀고 있다고 하지만 번번이 정부 여당이 약속한 노동정책이 후퇴되는 걸 지켜봐왔다.

정부‧여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양대지침 폐기 등을 노동정책 성과로 들지만 따지고 보면 노동계 요구는 끝내 관철되지 못했다.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합류하는 문제도 탄력근무제 확대를 논의하겠다는 여야정 상설협의체의 ‘일방적’ 합의에 따라 들러리만 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매주 수요일은 소상공인, 중소ㆍ중견기업, 대기업 등과 점심을 함께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노동계는 향후 친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강화되고 정부가 약속한 노동정책이 밀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연윤정 매일노동뉴스 편집부국장은 홍영표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정부‧여당과 노동계가 갈등을 벌이는 것에 대해 “홍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주도한 인물이다. 복리후생수당과 상여금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면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내년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되레 임금 총액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여기에 더해 올해 7월에 시행하기로 한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시간 12시간 포함)를 6개월 유예한 데 이어 2022년까지 논의하기로 한 탄력근로제 확대까지 연내 입법을 하겠다고 여당 원내대표가 밀어붙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는 없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11월20일까지 논의시한을 준 게 전부”라고 지적했다.

연윤정 부국장은 “민주노총은 여태까지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성실하게 사회적 대화에 임해 왔다. 그리고 내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다시 한 번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정부·여당의 정책 추진에 노동자 대표단체로서 항의하는 과정이 과격해 보일지라도 그게 본질이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의 목소리가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언론이 이런 상황을 갈등의 전부인 양 보도하면서 오히려 증폭시키기보다는 그 원인과 배경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게 사회의 공기로서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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