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규는 오마이뉴스 기자였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시작해 조직에 몸 담은 지 10년, 그 뒤 그가 선택한 길은 다시 광야였다. 오연호 대표는 그에게 “사장인 내 가슴은 또 설렜다. 어떤 사고를 칠지 기대가 컸다”며 “그를 두 단어로 정리하며 ‘똘끼’와 ‘재미’다”(책 ‘지연된 정의’ 추천사 중)라고 칭했다.

▲ 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지음, 출판사 후마니타스
▲ 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지음, 출판사 후마니타스
그렇지만 백수가 된 그의 삶은 고달팠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곤궁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오마이뉴스>를 퇴사한 후 나는 곧바로 지리산 아래 구례군에 집을 구했다. 산나물을 뜯었고, 그걸 팔아 취재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재심 시리즈 3부작 -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3인조 사건, 김신혜 사건’ 취재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아무리 산나물을 뜯어도 늘 마이너스였다. 힘들고, 때로는 화가 났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가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써 내려 갈 기사 때문이었다. 미국 비영리단체 ‘무죄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가 유죄의 누명을 쓴 무죄 피고인의 억울함을 벗겨주었던 것처럼, 차근차근히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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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비용은 ‘스토리펀딩’ 프로그램을 통해 무려 10억원이나 모았다. 재심 시리즈 3부작을 함께 한 박준영 변호사의 소송 비용도 함께 충당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그의 도전은 끝내 ‘재심’을 끌어냈다.

그는 ‘셜록’이라는 매체를 창간했다. 남들이 다 쓰는 기사 대신, 1주일에 기사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된 기사를 쓰자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1년간 월급도 밀리지 않고 주겠노라고 선언했다.

‘셜록’은 홈런을 쳤다. 불법 촬영 영상물을 유포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위디스크 실소유주 양진호 회장에 대한 자비 없는 보도가 이어졌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사회적 공분을 연료 삼아 후속 보도가 타 언론사에서도 쏟아졌다. 그러나 보도에는 예상치 못한 뒷이야기도 있었다. 그가 좀 더 큰 반향을 위해 방송사에 취재 내용을 들고 갔더니 거부했다는 거다. ‘삼성 같은 대기업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삼성이 무서워서 안 한다고 했으면 덜 슬펐을 터다. 그랬으면 이해(?)라도 했을 텐데, ‘삼성 사건이 아니어서 못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머리가 띵했다. 할 말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큰 놈, 쎈 놈과 싸움만을 즐긴다. 실력도 없으면서...”

▲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
▲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
그의 말에서 한국 언론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사실 언론사에는 숱한 제보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기삿감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열 표에서 밀리고 시간에 쫓겨 온라인에 실리지도 못한다. 컴퓨터에 텍스트 파일로 남거나 휴대전화 녹음 파일로 남아 빛을 보지 못한 숱한 글과 말은 어느새 뇌리에서 사라진다. 1면 톱이 될 만한 기사, 첫 꼭지로 내보낼 만한 기사, 이달의 기자상을 받을 만한 기사 그리고 ‘큰 출입처=나의 사회적 위치’로 스스로 규정지은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박상규가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을 아우르는 보도는 공기처럼 존재해야 하지만, 음지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셜록 박상규라는 존재는 이제 언론인들이 수시로 점검해야 할 잣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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