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마스크를 쓴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이 마스크를 벗자 기자회견장에서는 “아”하는 탄식이 나왔다. 오른쪽 눈에 멍이 들고 볼이 크게 부었으며 입은 부어서 삐뚤어져있었다. 윤헌주 노량진 수산시장 구시장(구시장) 상인은 “어제 밤(6일) 수협 측에게 폭행 당했는데 ‘오늘 죽겠구나’ 싶었다. 지금 구시장은 수협 측의 단전단수 조치로 암흑이 된 상태고 상인들은 집단 린치를 당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이 수협 측에 관련 입장을 물으니 수협 측은 “우리도 상인들에게 맞았다, 고소고발하겠다”고 답했다. 수협 측은 “구시장 상인들이 신시장 진입로를 점거하면서 저희가 경매물품을 가져오는 통로를 막았다. 이건 영업방해 행위”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불꺼진 구시장에서 조끼를 입은 상인들은 “저 뒤에 용역이 있어서 우리가 뭘하는 지 다 감시하고 있다”며 구시장 쪽에 의자를 두고 앉아있는 몇몇 사람을 가리켰다. 9일은 수협이 강제집행 전 마지막 입주신청을 받는다고 한 날이라 상인들은 더욱 예민해져있었다. 구시장에 남아있는 257개 가게 중 절반 가까이되는 127개 가게가 입주신청서를 썼다. 이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난 윤헌주 상인은 “신청서를 쓴 대부분의 상인들은 수협에 협박을 받고 쓴 것이다. 신청서를 썼다고하더라도 계속해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제집행이 임박한 가운데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 그저 ‘상인들은 신시장으로 이주시키려는 수협 vs 강제집행을 반대하는 구시장 상인들’ 정도로 이해하기에 수협과 구시장 상인들의 갈등사(史)는 너무나 길다.
우선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17조 ‘중앙도매시장의 경우에는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 또는 특별자치도가 개설한다’는 법에 따라 노량진 수산시장의 개설자가 서울시인데 왜 서울시가 아닌 수협이 시장을 관리하게 됐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1927년 ‘경성수산’이름으로 개장한 노량진 수산시장은 서울역 일대에 있다가 서울역이 개발되자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수협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관리하기전까지는 ‘한국냉장’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관리했다. 1997년도 IMF 때 김대중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한국냉장도 매각 수순을 밝았다. 이후 2002년부터 수협중앙회가 관리운영을 이임 받았다고 이후 수협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관리해왔다. 수협은 2007년부터 현대화 시장을 계획하면서 2015년 10월 완공 하기 전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자리 추첨을 하고 본격 이전에 착수한다.
노량진 수산시장과 수협의 갈등을 2015년부터 조사해온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원 연구위원은 수협 측이 처음 도면과 다르게 신시장을 지은 이유를 “2012년 동작구청이 도로를 연장해 고가도로를 여의도까지 잇자고 계획했는데 노량진 시장을 기존 안대로 신축하면 서로 엉키게 되니까 위치에 맞춰서 신축시장을 작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인들이 알고 있던, 합의안과 다른 지금의 신건물이 나왔다”고 했다. 상인들이 기대한 신시장과 지어진 시장의 모습이 달랐다는 거다.
상인들은 이 신시장에 들어가길 싫어하는 이유는 구시장보다 면적이 좁고, 사방이 막혔고, 통로 측 가게가 아니면 매상이 심하게 떨어져 구시장보다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게다가 구시장에서는 한달에 임대료로 30~40만원 정도를 냈는데 신시장은 두 배 가량을 내야한다. 상인들은 현대화건물 건설과정에 ‘충분한’ 의견수렴이 없었어서 점포면적, 통로, 배수구, 수족관, 주차장과 연결통로, 시장경관 등 수산물 시장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상권이 형성되지 어려운 입지라고 주장한다.
상인들이 수협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2016년 공청회 당시 서효성 총연합회 사무처장이 발표한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의 문제점과 해법’에 따르면 수협은 구시장 부지에 복합 리조트 건설을 포함한 ‘수산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상인들은 수협이 구시장 부지를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는 수협에게 신뢰를 보낼 수 없다고 한다.
상인들은 공익을 고려해야 하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수익 사업 하려는 수협에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효성 당시 총연합회 사무처장은 “수협이 국비지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 부지를 자체 수익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협은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을 하면서 국고를 1540억원 지원 받았다.
김상철 연구위원은 “애초 수협이 노량진 시장을 맡은 이유가 공익성 때문인데, 리조트 계획이 끼어들면서 시장 기능보다는 부지 개발 중심으로 논의가 됐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수협은 카지노까지 낀 리조트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카지노를 허가해주지 않았고 그 후 수협은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상인들에게, 일단은 옮기라고 하는 거다. 부지 확보가 핵심이라고 본다”고 수협을 비판했다.
실제로 2015년 7월31일 동작구청 도시관리국의 문서 ‘노량진 수협 복합리조트 공모사업 지원계획’이라는 문건을 보면 사업명은 ‘노량진 수협, 복합리조트’이며 이 리조트에는 호텔, 컨벤션, 해양수산테마파크, 카지노, 워터파크 등이 들어간다.
수협은 이런 지적에 “현대화시장 건물로 현 시장 이전 후 기존 시장부지에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지만 시장종사자들의 주장처럼 잔여부지 개발로 부동산 임대업에 주력할 생각은 없다”며 “다만 수산시장의 활성화를 전제로 어업인 지원과 수산물 유통을 활성화에 필요한 해양수산관련 복합시설로 건립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라고 답했다.
김상철 연구위원은 왜 구시장 상인들이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싸우는지를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시장으로 이주하면 구시장에 있을 때보다 더 수익이 낮을 게 뻔한데, 임대료는 더 내야 한다.”
상인들은 우선 법적 시장개설자인 서울시가 단전단수나 폭력사태라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상인들은 2016년 공청회 당시에도 “서울시가 다시 관리운영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수협이 노량진 수산시장 일대 토지와 건물을 정부에 되파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서울시는 여전히 적극 해결할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 측은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수협의 자산인 구시장 점포에 법적 개입은 어렵다. 서울시가 시장개설자이지만 농안법상 판매상인은 관리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서울시 측은 “수협중앙회가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이고 대법원도 자산을 인정한 판결을 내놨기에 개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인 김병기 의원실 측도 해당사안에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수협 측도 대법원 승소판결을 대면서 입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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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집행만이라도 우선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철 연구위원은 “서울시가 지금 당장 할 일은 시장개설자로서 단전 단수를 풀고 강제집행을 막는 일이다. 시장운영과 관련된 관리나 감독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중당은 국회에서 이미 발의된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조속히 통과시키자고도 했다. 이은혜 민중당 대변인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을 언급하면서 “해당 법은 강제집행에서 인명피해와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제집행 절차를 개선하는 법안인데, 하루빨리 법안이 통과되길 바란다”며 “서울시는 법을 핑계로 반인권적 폭력사태를 방치하지 말고 적극 나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