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젠은 일본 도시바와 프랑스 기업 Engie가 공동으로 만든 기업이었다. 하지만 주식의 40%를 가진 Engie가 파산하면서 주식 전부를 도시바가 떠안았다. 모기업 도시바마저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누젠은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국내 핵산업계와 일부 언론은 한전이 누젠 인수 계약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UAE에 이어 영국 핵발전소 사업권을 얻을 기회라며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 누젠의 무어사이드 핵발전소 사업은 그리 밝지 못했다. 영국에서 핵발전은 더 이상 경제성이 없다. 2017년 영국 정부는 차액계약제도(CfDs)에 따라 제2차 재생에너지 발전 프로젝트 입찰을 실시했는데, 이때 승인된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MWh당 57.50파운드로 영국 남동부에 짓기로 한 힝클리 포인트C 핵발전소에 적용된 92.50파운드의 62%에 불과했다.
2006년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할 때, 일본 핵산업계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자신이 핵발전 기술을 배운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해서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는 계속됐다. 2017년 도시바는 핵발전 사업에서 60억 달러(약 6.8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전력소비 증가율 둔화, 후쿠시마 사고 등으로 “원자력 르네상스”는 오지 않았다. 이는 도시바 뿐만 아니다. 같은 시기 미국과 일본 핵산업계의 경쟁자인 프랑스 아레바도 비슷했다.
한 때 우라늄 채굴에서 농축,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 핵폐기물 처분 및 재처리까지 핵산업의 전 공정을 다 운영하던 프랑스 아레바는 2016년 사실상 파산상태에 내몰렸다. 결국 대규모 인력감축과 자산매각, 정부의 주식매입 조치를 거치면서 회사가 쪼개지는 수모를 겪었다. 지금은 핵발전부문은 프랑스 공기업인 EDF로 옮겨가고 핵연료부문만 남아 회사 이름이 ‘오라노’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정 협의체를 열고 “원전 기술력과 원전 사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는 합의를 발표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나 차려도 시장분석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물며 국가 정책 수립에 기초적인 분석과 평가 없이 정부가 “핵산업계 달래기”를 나서는 모습이 너무나 우려스럽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아무런 성과를 못 거둔 핵산업계에 지원을 계속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굴지의 글로벌 핵기업이 무너지는데 한국 핵산업계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진행된 과잉투자와 지원을 걷어내고 “핵산업계의 질서 있는 퇴각”을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 있는 정부 아닐까? 이런 질문들에 정부와 정치권은 대답해야 한다. 이번 합의는 단순한 민간 기업의 결정이 아니라,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