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2일 자신의 인천 부평 지역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한국GM 노조를 향해 “미국에서 그렇게 하면 테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는 12일 원내대표 취임 6개월 맞이 오찬감담회 자리와 자신의 페이스북 등에서 “제가 한국GM 출신이고 지역구 의원이지만 한국GM의 모든 경영 사안에 일일이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3면
▲ 동아일보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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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다음날 대부분의 아침신문이 다뤘다. 조선일보는 13일자 5면에 “한국GM 노조의 사무실 점거에… 홍영표 ‘미국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홍 원내대표의 얼굴 사진과 함께 4단 기사로 실었다. 한국일보도 13일자 5면에 머리기사로 “민주노총에 직격탄 날림 홍영표 ‘너무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 한국일보 5면
▲ 한국일보 5면

매일경제신문은 13일자 1면에 ‘한국GM노조 사무실 점거 미국서 그렇게 하면 테러’라는 홍 원내대표 발언을 2단기사로 실은데 이어 6면에도 관련 해설기사를 보도했다.

동아일보 1·3면에 정부와 민주노총 갈등 주목

정부·여당과 민주노총의 갈등을 가장 크게 다룬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13일자 1면 머리기사에 “‘말 안통해’ 민노총에 폭발한 文정부”란 제목을 달아 여당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무실 점거 뿐만 아니라 노동계가 탄력근로제, 광주형 일자리 등에서 사사건건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한국GM 비정규직이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대회의실을 점거한 사실도 함께 보도해 정부와 민주노총의 갈등에 집중했다.

▲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작은 상자기사는 매일경제 1면
▲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작은 상자기사는 매일경제 1면

동아일보는 3면도 전면을 할애해 관련 내용을 다뤘다. 동아일보 3면 머리기사는 ‘투자 문턱 자꾸만 높여… 노동계에 휘둘리는 광주형 일자리’라는 제목을 달았고, 3면 하단엔 ‘민노총, 규제혁신 발목잡아…靑내부 더 밀려선 안돼’라는 3단기사도 실었다.

동아일보는 홍 원내대표와 임종석 비서실장, 이낙연 총리, 이해찬 대표 등 여권 인사들의 민노총 비판 발언도 소개했다.

▲ 동아일보 3면
▲ 동아일보 3면

한겨레 “GM 견제장치라던 산은 비토권 유명무실”

이날 한국GM 정규직노조가 왜 홍 원내대표 사무실을 점거했는지를 알려준 신문은 한겨레신문 정도에 그쳤다. 한겨레는 13일자 18면에 ‘한국GM 경영 견제장치라더니… 산은 비토권 유명무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한국GM 의사결정에 17개 조항의 비토권을 가졌지만 법인분리 갈등 등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엔 개입할 수 없어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흡수합병, 신설합병, 조직개편 등의 결정 때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지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 예외 조항을 두고 있고 자산의 취득과 판매에도 개입할 수 있지만 총자산의 20%가 넘을 때만 가능하다.

▲ 한겨레 18면
▲ 한겨레 18면

한편 33년 전인 1985년 대우자동차 파업 때 홍영표 원내대표는 인천 부평공장을 점거하고 농성하던 노동자 대표로 김우중 회장과 밤샘 마라톤협상을 벌인 이력이 있다. 당시 홍 원내대표는 노조 위원장 등 노조 주요간부도 아니었지만 농성자 대표로 김우중 회장과 교섭했다. 

두 사람은 14시간 마라톤 교섭 끝에 임금 16.4% 인상에 합의하고 다음날부터 정상조업에 임하기로 하고 농성을 풀었다. 이는 1985년 4월25일자 동아일보 11면 머리기사 ‘대우자동차 노사분규 타결’이란 제목으로 보도됐다. 당시 김 회장이 교섭권을 가진 노조 지도부를 배제한 채 굳이 홍영표 원내대표와 교섭한 이유는 당시 노조가 노동자들의 신임을 받지 못한데다가 홍 원내대표가 자동차 설계도면 등이 보관된 기술연구소를 점거하고 있어서다.

▲ 동아일보 1985년 4월25일자 11면
▲ 동아일보 1985년 4월25일자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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