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견진술 하러 나온 TV조선이 같은 내용을 보도한 다른 방송사 MBC·JTBC·채널A 보도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의결이 보류됐다.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지난 8월22일 강원도 한 지역에서 주민 7명이 장애인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을 보도했다. 이 프로그램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가해자 중심의 인터뷰 내용을 내보내고 프로그램 끝에 ‘속마음 셀카’라는 코너에서 진행자가 피해자에게 ‘반편이’와 ‘성적 악귀’라는 단어를 사용해 장애인 여성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8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고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8월22일 방영분에 제재수위 의결을 보류했다. TV조선과 자유한국당 추천 전광삼 방통심의위 상임위원이 ‘TV조선이라는 이유로 심의위에 올라왔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방통심의위가 같은 사건을 보도한 MBC·JTBC·채널A도 살피기로 한 결과다.

미디어오늘은 TV조선이 예로 든 MBC·JTBC·채널A 보도와 대담프로그램을 확인한 결과 JTBC ‘뉴스룸’(8월21일)과 채널A ‘뉴스A’(8월20일), 채널A ‘사건상황실’(8월22일)에서는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MBC ‘실화탐사대’ 대담프로그램은 사회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보도 취지는 좋았으나 사건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의 선정적 인터뷰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TV조선과 JTBC의 경우 같은 사람이 말한 인터뷰 영상이지만 다르게 편집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노인이 속은 거 같아. 걔는 임신이 안 되는 애다. 그런데도 임신이 돼 버렸네.” (TV조선) 

“걔는 임신이 안 되는 애다. 그랬는데 임신이 덜커덕 된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걔 입막음하려고 애를 많이 썼나 봐.” (JTBC)

▲ 사진= 위쪽부터 8월21일 자 JTBC 뉴스룸과 8월22일 자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보도화면 갈무리
▲ 사진= 위쪽부터 8월21일자 JTBC 뉴스룸과 8월22일 자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보도화면 갈무리

비슷한 인터뷰처럼 보이지만, TV조선은 인터뷰 도입부에 ‘노인이 속은 거 같아’라는 가해자 중심의 인터뷰를 내보냈고 JTBC는 ‘걔 입막음하려고 애를 많이 썼나 봐’라며 피해자 중심으로 인터뷰를 편집했다. 채널A ‘사건상황실’ 대담프로그램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가해자 가족의 인터뷰를 담았지만, 인터뷰이가 ‘피의자 가족’이라는 걸 명시했고 진행자와 패널이 가해자 가족의 인터뷰 내용 모니터링 후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MBC 보도는 JTBC·채널A와 달리 마을주민들 인터뷰 내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 MBC ‘실화탐사대’는 9월12일 방영분에서 피해자에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 사회적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사건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의 자극적 인터뷰를 여과 없이 내보냈다.

▲ 사진=9월12일 자 MBC 실화탐사대 보도화면 갈무리
▲ 사진=9월12일 자 MBC 실화탐사대 보도화면 갈무리

TV조선이 다른 방송사까지 모니터링하며 억울함을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배경에는 방송사 재승인 문제가 있다. 지난해 방통위는 종편4사 재승인 심사 때 오보·막말·편파방송 관련 방통심의위의 법정제재를 1년에 4건 이하로 유지할 것을 재승인 조건으로 부과했다. 올 한 해 종편이 법정제재를 5건 받으면 방통위가 시정명령을 내리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재승인 취소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TV조선은 지난달 22일 ‘김광일의 신통방통’ 프로그램으로 재승인 이후 세 번째 오보·막말·편파방송 관련 법정제재를 받았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 3인(허미숙·심영섭·윤정주)과 바른미래당 추천 박상수 위원은 이날 소위에서 TV조선의 보도를 비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추천 전광삼 상임위원은 TV조선이라 또 심의위에 올라왔다고 주장했다.

허미숙 방송소위 위원장은 이날 TV조선과 JTBC 인터뷰의 차이점을 지적하며 “두 방송사 모두 ‘걔는 임신이 안 되는 애다. 그런데도 임신이 돼 버렸네’라는 멘트는 똑같이 썼다. 그런데 TV조선은 앞부분에 ‘노인들이 속은 것 같아’라는 발언을 넣고 다른 방송은 뒤에 ‘(가해자들이) 그래서 걔 입막음하려고 애를 많이 썼나 봐’를 담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TV조선의 편집은 마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속아서 이런 범행을 하게 됐다는 취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해석했다. 다수의 위원이 이 같은 발언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힌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의견진술자로 출석한 오윤정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담당PD는 가해자를 옹호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오 PD는 “시청자들이 상식적으로 ‘노인들이 속은 거 같다’라는 발언이 나간다고 해서 진짜 노인들이 속았다고 판단하지 않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영섭 위원은 “TV조선은 왜 우리만 문제 삼냐고 한다. TV조선의 전형적인 의견진술서 답변이다. 다른 매체도 안건 올리고 의견진술 들을 거다. 탓하지 말라”고 말했다.

전광삼 상임위원은 TV조선이라 또 민원이 올라왔다고 주장했다. 전 위원은 “‘반편이’라는 단어는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나온다.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문제는 인터뷰 내용인데 다른 방송사는 안건이 없다. TV조선이니까. 진행자가 김광일이니까”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광일 진행자는 “소설가 송기원씨가 ‘반편이’라는 단어를 썼다.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억눌린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새로운 진실에 접근하자고 했던 게 워낙 인상적이었다”고 해명했다. 김 진행자는 “TV조선에 방송을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이미 드렸다”고 덧붙였다.

이날 방송소위는 TV조선을 비롯해 같은 내용을 내보낸 MBC·JTBC·채널A 보도 또한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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