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 회담 후 북한이 송이버섯 2톤을 선물하자 청와대가 답례로 제주 감귤 200톤을 북녘에 보낸 것을 두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역풍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10킬로그램 들이 상자 2만개에 제주 귤을 수송기에 담아 북녁에 선물로 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청와대는 귤 선물은 송이버섯에 답례라고 밝혔지만 답례 이상의 의미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시 제주도 한라산 등반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에서 제주 감귤은 연내 서울 답방을 추진코자 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서울 답방은 북미정상회담과 긴밀히 연결돼 있어 제주 감귤 선물은 남북관계는 이상이 없다는 뜻을 대외에 알리고 북미관계를 견인하겠다는 뜻도 들어있다.

하지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제주 감귤 선물에 엉뚱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났다. 홍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군 수송기로 북에 보냈다는 귤 상자 속에 귤만 들어있다고 믿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라며 마치 귤 상자에 다른 물건이 포함돼 있어 부당한 거래를 하는 것처럼 음모론을 제기했다.

홍 전 대표의 발언은 즉각 역풍을 몰고 왔다.

바른미래당은 논평을 통해 “정부가 귤상자를 보낸다고 하니 과거 기득권 부패 정치인들이 사과 박스에 돈을 넣고 은밀한 거래를 했던 것처럼 검은 돈이라도 넣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비난했다. 바른미래당은 “정부여당에 대한 정상적인 비판마저도 홍 전 대표의 입을 거치면 희화화되고 정부의 지지율은 상승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주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상무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과박스부터 시작해 과일 대신 엉뚱한 물건을 과일상자에 담는 일이야 자유한국당이 전문일지 모르지만, 괜한 시비 걸기를 중단하라”고 말했다.

홍 전 대표의 발언이 때 아닌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공식을 끄집어내며 역풍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가 대기업에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수백억 억 원 현금을 실은 트럭을 통째로 한나라당에 전달하는 등 모두 840억원이 넘은 불법선거자금을 모금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별칭이 붙어 대국민적 비난을 받았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는 등 절치부심해야 했다.

자유한국당 전직 대표의 발언 하나로 당의 존재를 위협케 했던 차떼기당이라는 나쁜 기억이 회자되고 있는 셈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홍 전 대표의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과거 ‘차떼기당’이라는 표현을 두고 홍 전 대표의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민중의소리.
▲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민중의소리.

지난 2004년 10월 이해찬 대표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를 맡고 있을 때 대정부질의에서 안택수 의원이 이해찬 대표의 한나라당 비난 발언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촉구하자 이 대표는 “한나라당은 다 아는 것처럼 차떼기하고 지하실에서 돈 받았던 정당 아니냐. 제가 말한 것은 다 사실”이라고 말해 공방이 일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홍준표 전 대표(당시 의원)는 이해찬 대표에게 “총리의 차떼기당 발언은 심했지요”라고 몰아 붙였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는 “정책에 대한 질문을 하라”고 굽히지 않았고, 홍 전 대표는 “야당 폄훼 발언을 한 일이 있느냐”고 받아쳤다. 이에 이 대표는 “5·16 군사정부 때는 총리가 의원들 야단도 쳤다”며 물러서지 않아 긴장감이 흘렀다.

홍 전 대표의 발언으로 차떼기당이라는 표현이 회자되는 이 때 이해찬 대표 역시 할 말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이 대표가 대정부 질의에서 차떼기당이라고 비난해 정국이 경색되자 당시 정권 최고위 인사들이 비공개 모임에서 수습책을 논의했는데 참석자 중엔 김병준 정책실장도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어쩌면 홍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수습책을 논의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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