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데이지호는 운이 없는 선박이었다. 

1993년 일본에서 유조선으로 건조했지만 2009년 노후해 폐선직전 한국 폴라리스쉬핑이 인수했다. 폐선해야 할 노후선박이 하필 기름보다 훨씬 무거운 철광석을 운반하는 광석 운반선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7년 3월31일 밤 11시20분 경 우루과이 동쪽 3000Km 해상에서 스텔라데이지호는 갑자기 침몰했다. 침몰당시 한국은 탄핵 정국이었다. 배가 출항한 브라질도 탄핵정국이었다. 두 정부는 정치적 난관 속에 스텔라데이지를 구하지 못했다. 

이런 불운으로 선원들은 (한국인 8명, 필리핀인 14명) 아직도 실종 상태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축구장을 3개 합친 정도의 면적으로 세워놓으면 63빌딩보다 더 높은 초대형 선박이다.

사라진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은 실종 선원 가족들의 등이 떠밀려서다. 선원 가족들은 정말 평범한 대한민국의 서민들이었다. 해외 갈일이 많지 않은 그들에게 사고가 난 남대서양은 지구 반대편의 정말 머나먼 곳이었다. 

가족들과 처음 만난 작년 8월 말이다. 가족들은 내게 언론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다. 그리고 사고당시 구조 주체국이었던 우루과이를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채 일주일이 안 돼 나는 우루과이행 비행기를 탔다. 남대서양 수심 3000미터 아래로 사라진 광석운반선 스텔라데이지호를 취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모했다. 

취재는 원칙적으로 최대한 현장 가까이 가야하는 일이다. 하지만 바다 밑 깊은 곳을 갈수는 없다. 그래서 대서양 주변국만이라도 접근하는 것. 그것이 내가 취재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렇게 최선만 다해주면 가족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을 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가족들의 원을 풀어주는 면피용 취재를 시작했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로 67일간 헤매고 다니며 취재했다. 다행히 생존 스텔라데이지 선원들의 최초 증언 동영상을 입수했다. 약 26만톤의 철광석을 싣고 운항하던 스텔라데이지호는 선체가 V자 모양으로 꺾여서 침몰했다는 증언을 확보해 배의 결함으로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후 프랑스로 날아가 심해 4700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한 에어 프랑스 447 사건을 취재하고 미국의 세계 최대 해양 연구소인 우즈홀 연구소를 취재해 수심 3000미터라도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고 방송을 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 옆에 언론이 항상 있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8월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심해수색방비 투입이 국무회의에서 최종 결정났다. 지난달 이에 대한 업체 입찰이 시작됐으나 53억이라는 비용이 비현실적이었다. 단 한군데의 업체도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후 재입찰을 통해 한 업체가 최종 입찰 참여 서류를 제출한 상태다. 정부는 이 업체를 우선 협상 업체로서 다음주 계약 체결까지 협상을 할 예정이다. 

만약 이 업체가 최종 선정돼 12월에 남대서양에서 심해 장비가 투입될 경우 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정부가 국민의 생사획인을 하기 위한 최초의 심해수색이다. 실종자 선원 가족들은 사고 선박의 블랙박스(VDR)를 회수하길 간절히 바란다. 사고 원인 규명은 물론 자신들 가족의 마지막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루과이 취재 당시 우루과이 부통령인 루시아 토플란스키는 “시신을 확인하지 않으면 가족들은 그 죽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루과이든 한국이든 세상 모든 가족들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스텔라데이지 사건은 진실 규명에 한발짝 앞으로 나갔다. 광화문에는 한 겨울의 눈보라와 지난 여름 혹독한 더위 속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찾아 달라’는 서명을 하고 있는 선원들의 가족들이 있다. 나는 가족들에게 “가족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언론도 포기할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계속 해왔다. 비록 면피지만 언론인 자격으로 나는 가족들 옆에 있을 것이며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을 때까지 이 취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 김영미 독립PD
▲ 김영미 독립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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