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엄마들’의 로고가 보라색이니, 그 배후가 통합진보당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더라. 이런 이야기는 ‘보통 사람’, 특히 엄마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린 것 같다. 굳이 통진당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엄마들이 이렇게 하다니 대단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얼마 전에는 한 토론회를 갔는데 ‘요즘에는 엄마들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소개를 받았는데 불쾌해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엄마들을 아이를 위한 희생과 연관해 숭고하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 외 영역에서는 판단능력은 떨어지는, 그래서 정치와는 안 어울리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 같다.”

최근 이슈의 중점인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를 이루기까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한 축을 맡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의 말이다. 2017년 6월 창립했고 1년 여 만에 큰 이슈를 이끈 만큼 그에게 쏟아지는 조명도 많고, 인터뷰도 쇄도한다. 5일 오후 서울의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기 전 후 모두 인터뷰가 예정돼있었다. 워낙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그지만 “이런 주목이 참 감사하고,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 사안에 언론이 관심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 5일 조성실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가 미디어오늘과 만나 교육부의 사립유치원 관련 대책 문서를 보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5일 조성실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가 미디어오늘과 만나 교육부의 사립유치원 관련 대책 문서를 보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수많은 인터뷰와 토론회 참석을 하니 질문도 쏟아지는데, 여전히 ‘엄마’라는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는 질문이 많다고 한다. 조 공동대표는 “일종의 ‘모성 패널티’(자녀가 있는 여성이 받는 불이익)같은 질문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마들이 못할게 뭐냐’라고 반문한다. 엄마들이야말로 생활경험과 양육 경험으로 관련 사안에 대한 명확한 문제 진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비리 유치원과 관련된 사안에서 이슈가 됐지만 육아와 관련되지 않은 사안에도 폭넓게 개입하고 있다. 성평등, 복지, 비폭력, 생태 이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팀이 운영되고 있다. 보육정책팀, 노동정책팀, 벌레먹은사과팀(환경, 보건정책팀), 이름바꾸기프로젝트팀(여성의 가족관계 내, 성불평등한 호칭 개선 등), 혐오표현금지팀, 무기안녕팀(무기 장난감 모니터링 및 프로그램 감시), 유보육공공성투명성강화팀, 통합보육(장애영유아)팀, 풀뿌리유보육팀, 놀이작당팀(아이들의 놀권리 증진을 위한 팀) 등 20여개가 넘는 팀이 있다.

“2~3명만 모이면 한 팀을 만들고, 시한이나 업무성과에만 집중하지 않고 ‘하고 싶은 사람이 하고 싶은 만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한다. 다들 육아를 하고 있고 조직에 상근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네이버카페, 텔레그램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오프라인 모임은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30명~40명 정도만 모인다. 유치원 이슈도 다른 많은 영역 중 하나로 다루고 있었는데, 이렇게 크게 이슈가 되면서 부각될 줄은 처음에는 몰랐다.”

▲ 정치하는 엄마들의 팀, 소모임 소개. 사진=정치하는 엄마들 팜플렛
▲ 정치하는 엄마들의 팀, 소모임 소개. 사진출처=정치하는 엄마들 팜플렛
이들의 첫모임은 2017년 4월22일이었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겨레의 한 칼럼 꼭지로 시작된 이 모임에 조성실 공동대표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을까.

“친구 중 한명이 장하나 의원의 칼럼 링크를 보내오면서 ‘널 부르는 자리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나는 전업주부였고 아기 젖을 물리는 때라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그 칼럼을 보고 운명처럼 느껴졌다. 첫모임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것으로 만족했다. 당시에 남편이 박사공부를 하고 졸업을 했는데 ‘남편은 커리어도 쌓고 아빠도 됐구나’라고 생각되는 한편 ‘나는 엄마만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알 수 없는 ‘구조적 배신감’같은 게 들었다. 첫모임에 모인 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너무 뜨겁게 공감이 됐다.”

조성실 공동대표는 어렸을 적부터 정치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시의원 출신으로 어렸을 적 조 대표의 사진 중에는 확성기를 들고 선거유세를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후로도 꾸준히 정치참여를 해왔다.

“정치적 활동을 많이 하다보면 단체 전체가 정치색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서 회원 개개인의 정치참여는 권장하되, 운영진에 대해서는 직함과 소속 등을 가지게 되면 공지를 하고 운영진이 제재를 하면 둘 중 하나를 그만두는 내규를 만들었다. 이름이 ‘정치하는 엄마들’인 만큼 직접적 정치참여를 권장하는 편이다. 단체 안에서 출마자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정치를 한다고 하면 ‘변질됐네’라는 식의 부정적 인식을 하는데 정치란 누군갈 설득하고 의제를 만들고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당사자’ 정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효율 면에서 더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에 이어 ‘비리 어린이집’ 명단 공개도 할 생각이다. 이미 정보공개청구 신청은 완료된 상태다.

“사립유치원 비리 공개 이후 대응은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한다. 이전에는 ‘그거 알아서 뭐하게요?’라는 공무원도 있었고 전화문의를 하루에 13통 하는 분도 있었을 만큼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대응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대응이 소프트하고 젠틀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보공개를 얼마나 잘해줄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한유총 등 관계기관의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교육부 등은 국민이 여론에 불을 붙여줬을 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이 열기가 식으면 한유총을 또 비리를 그대로 둔 채 비웃을 것이다.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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