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경제사령탑’의 교체가 가시화되면서 후임 인선에 이른바 ‘변양균 라인’에 속하는 이들이 거론되고 있다. 관료 출신 인사들이 장악한 경제팀에 다시 경제관료 출신이 기용될 경우 사실상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힘이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변양균 라인’이란 노무현정부 당시 기획예산처 장차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씨와 함께 예산실 또는 기획예산처에서 함께 근무했거나 친분이 있는 관료를 뜻한다. 예산부서에서 일한 관료들이다. 이들은 현재 경제부처와 청와대 경제팀 주요 포스트에서 기용돼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통합되기 전인 2005년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2005년)일 때 전략기획관을 맡았다. 현재 후임 경제부총리로 언론에 연일 거론되고 있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장 시절 예산기준과장을 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때 예산처 정책기획팀장을 맡았다.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차관(2003~2004년) 때 재정기획실 사회재정심의관과 예산실 예산총괄심의관이었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변 전 실장이 예산처 기획관리실장일 때(2002년) 예산실 예산총괄과장을 역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반장식 수석을 제외하고 모두 이명박 정부 또는 박근혜 정부 때에도 기획재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처음엔 문재인 정부의 경제 공약인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고 준비해온 홍장표 전 경제수석 팀이 경제정책을 중심에서 이끌고 있어 영향력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인상을 비롯해 소득주도성장이 기존 산업계와 시장의 반발을 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가 이들 경제관료 쪽으로 옮겨졌다는 분석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른바 ‘변양균 라인’ 경제관료가 다시 정책 중심에 나서면 현정부 경제정책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지난 2012년 9월24일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장관 초청으로 서울 반포동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전직 부총리. 장관 만찬간담회에서 변양균(가운데) 기획예산처 6대 장관과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2012년 9월24일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장관 초청으로 서울 반포동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전직 부총리. 장관 만찬간담회에서 변양균(가운데) 기획예산처 6대 장관과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 교수는 “변양균 라인과 같은 경제관료 그룹은 경제정책을 기업의 공급생산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장하성 실장과 엇박자가 자꾸 나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말부터 공정경쟁 뿐 아니라 혁신성장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경제정책에 생각이 달라졌다고 본다. 청와대 팀들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보니 관료들에게 넘겼고, 관료들은 주류경제학 사고에 젖은 사람들어서 소득주도성장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 교수는 “두 가지(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가 상호보완이란 걸 이해하는 사람이 후임 사령탑을 맡아야 하지만 현재 경제부총리로 거론되는 변양균 라인 사람들은 전통적인 공급 위주 경제 사고를 하는 사람들로 소득주도성장 개념에 익숙치 않다”며 “반면 정책실장으로 거론되는 김수현 수석은 부동산 전문가이자 부동산학과 교수 출신이어서 거시경제를 조정하는데엔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변양균 라인이 중심에 다시 등장한 계기를 두고 최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의 개념은 산업의 생태계가 좋을 때는 잘 작동하지만 경제가 급변하는 시기엔 취약점이 있다. 가계소득은 2016년부터 악화하기 시작했고, 군산에서 한국팀이 철수하면서 협력업체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밥집이 문닫고 건물청소 경비하는 사람들까지 줄어드는 연쇄적인 상황을 현 경제팀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면서 (대통령의 신뢰가) 관료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고, 그 신호탄은 지난 7월 홍장표 경제수석이 경질됐을 때”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문 대통령이 이런 이유로 경제문제에 굉장히 초조하게 쫓기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만들려면 공정경쟁과 혁신성장을 잘 이해하면서 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인사를 써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거론되는 인사 외에 새로운 인물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경제사령탑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먼저 교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선은 8일자 1면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르면 이번 주말 김동연 부총리 후임을 지명할 것으로 7일 알려졌다”며 “신임 경제부총리 후보로는 홍남기 현 국무조정실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임종룡,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등 다른 후보자가 지명되면 부총리 교체로만 그칠 수 있다”고 썼다.

특히 조선은 “청와대 주변에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그동안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사이가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김 부총리가 현 정부 경제 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소신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청와대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은 “여권에서는 장 실장 후임을 부총리와 시간을 두고 발표하는 것 또한 김 부총리에 대한 책임을 먼저 묻는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전했다”고 해석했다.

▲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사진=KBS 오늘밤 김제동 방송영상 갈무리
▲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사진=KBS 오늘밤 김제동 방송영상 갈무리
김동연 ‘정치적 의사결정 위기’ 발언은 협치가 중요하단 뜻

또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경제가 지금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라고 발언한 대목을 두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김 부총리는 다시 이를 해명했다.

조선일보는 1면 ‘김동연 “경제위기 아닌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 기사에서 “경제부총리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평소 이견을 보여온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에 대한 비판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최고위층의 경제정책 결정 과정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도 ‘경제위기 아닌 ‘정치적 의사결정’ 위기’ 기사에서 “김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교체가 유력시 되는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장 실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기획재정부는 보도참고자료를 내어 “부총리의 발언은 현 경제상황에서 경제구조개혁·규제개혁 입법 등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야를 뛰어넘는 협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기재부에 의하면 이날 밤 예결위에서 김 부총리는 “경제가 위기가 아니라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라는 생각”이라며 “예를 들어 규제개혁입법, 경제구조개혁입법 등이 경제분야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는 주요 내용들이다. 경제에 여야가 따로 없으며 이런 의사결정에서 머리를 맞대고 책임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여야정 협의체도 이제 가동된 만큼, 외람되지만 경제에 있어 여야간 연정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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