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재벌 개혁’ 주제로 제작한 지상파 라디오 광고가 방송협회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방송광고는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해선 안 된다”는 방송광고심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반면 ‘노동법 개정’ 주제로 제작된 노동계의 다른 광고는 광고 심의를 통과해 지상파가 재벌 눈치 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오는 21일 총파업 결의를 앞두고 노동 이슈 의제화를 위해 지상파 라디오 방송 광고를 제작했다. ‘노동법 개정’과 ‘재벌 개혁’을 주제로 두 편을 만들었다. 두 편 가운데 문제가 된 ‘재벌 개혁’ 편은 다음과 같다.

리포터 : “네, 저는 지금 재벌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나와있습니다.”

시민1 : “날 때부터 갑이죠.”

시민2 : “일자리는 안 만들고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들?”

시민3 : “뇌물에, 폭력에, 돈 많은 깡패?”

리포터 물음에 시민들의 재벌 비판이 나온 뒤, 내레이터가 “이런 갑질 없는 나라를 위해 재벌 개혁,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함께합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이런 ‘의견광고’는 방송협회 내 심의부서가 아닌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심의를 진행한다. 방송협회와 지상파 3사 추천을 받은 학계 인사나 현업 언론인, 법조계 인사 등 6명이 방송협회 광고심의위원으로 활동한다.

지난 1일 심의위는 노동계의 ‘재벌 개혁’ 편 광고가 차별금지를 명시한 방송광고심의 규정 13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방송불가 판정을 전원 의결했다. 심의위는 전원합의가 원칙이다.

심의위는 “전체적으로 표현이 격하고 일방 주장으로 편견을 조장해 방송이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노동법 개정’ 편은 전날 심의위에서 문제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 지상파 3사 사옥. 방송협회는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이 창립한 단체다. 사진=미디어오늘
▲ 지상파 3사 사옥. 방송협회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창립한 단체다. 사진=미디어오늘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13조는 “방송광고는 국가, 인종, 성, 연령, 직업, 종교, 신념, 장애, 계층, 지역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협회 심의부 관계자는 7일 통화에서 “심의위가 특정한 프레임을 갖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실제 노동법 개정 편의 경우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광고라고 심의위원들이 판단했다. 그러나 재벌 개혁 편의 경우 노동계 견해와 다른 이해 당사자들과 입장이 있다. 그걸 다 아울러 판단한 결과”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광고 심의를 고려해 특정 기업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고 매우 무난한 내용으로 준비한 결과물인데, 방송불가는 지상파의 지나친 ‘재벌 눈치보기’라고 비판한다. 

정나위 민주노총 선전차장은 “지상파에선 재벌 개혁 내용을 광고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노동법 개정이나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도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주제는 광고가 가능한데 왜 재벌 개혁은 안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차장은 “이번 재벌 개혁 편 광고는 자체적으로 ‘내용이 부실하고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이나 법에 의견 개진할 수 있어도 재벌에는 의견을 나타내선 안 된다는 건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방송광고심의는 2008년 6월 헌법재판소가 국가 행정기관에 의한 사전 심의를 위헌이라고 판결한 이후 그해 11월부터 방송협회가 사전 자율심의를 하고 있다. 방송협회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창립한 단체다.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다른 조직이다. 현재 방송협회장은 박정훈 SBS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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