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어린이집 교사들의 장시간 노동을 얘기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니 토론자로 나온 한 연구자가 ‘9시간도 못되게 일하던데 장시간 노동은 아니죠?’라고 말을 시작해서 ‘하루 평균 1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사회에서 그렇게 주장하면 부도덕하다’며 ‘나도 연구과제 빨리 제출해야할 때는 점심도 책상에서 먹으며 글을 쓴다’고 반박했다. 보육교사 장시간 노동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렸다. 그도 그럴만하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집 근무 보육교사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8시간26분이다.

보건복지부는 3년마다 어린이집 운영을 조사해 ‘보육실태조사’를 발간한다. 이 통계는 어린이집 운영과 동향을 보는 중요한 기초자료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통계결과가 나오면 모든 얘기는 이 결과에 근거해 전개된다. 사람들은 통계수치에만 주목할 뿐 정작 그 설문조사는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 누구 손으로 작성했는지, 어떤 질문에 답한 건지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단연코 보육교사가 근무시간 통계는 ‘가짜’라고 말한다. 이유는 이렇다.

▲ 어린이집에 등교하는 어린이. ⓒ 연합뉴스
▲ 어린이집에 등교하는 어린이. ⓒ 연합뉴스
우선 한 어린이집에 일하는 보육교사는 정교사, 보조교사로 구분한다. 풀타임 노동자와 4시간, 6시간 파트타임 노동자가 같이 일한다. 8시간26분이라는 수치는 풀타임 노동자와 파트타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평균 낸 값이다. 두 번째 이 결과가 가짜인 이유는 설문 응답자가 어린이집 원장이라서다. 사용자에게 ‘당신은 노동자에게 얼마만큼의 일을 시키느냐?’고 묻고, 사용자는 ‘하루 8시간26분만 시킨다’라고 대답한 꼴이다. 세 번째 이유는 보육교사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만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서다. 교사가 직접 아이를 보육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30분으로 규정돼 있다. 매일 1시간 일지를 쓴다. 이미 9시간이 넘는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원장의 입과 손을 빌어 가짜 보육실태 결과를 발표하면서 교사들이 처한 상태를 덮어버렸다.

교사들이 직접 실태조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덮힌 진실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서울시 동작구에서 보육교사 실태조사를 시도했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교육받는 장소에 가서 설문지를 나눠주고 교육이 끝나고 나오는 교사에게 결과지를 받았다. 매번 적게는 다섯 명, 많게는 열댓 명씩 받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결과지를 모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장 직원들이 교사들 손에 들린 설문지를 죄다 뺏어 와서는 다짜고짜 ‘여기서 하지 말라’며 막아섰다. 교육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자율적인 설문조사인데 말이다. 왜냐고 물으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원장님들이 싫어하니 가라’는 어이없는 답을 들었다.

그렇게 어린이집 교사가 직접 참여하는 실태조사는 안타깝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일은 그 결과 때문이다. 수십 개 모인 결과지만 봤지만 어린이집 교사들은 근무시간 외에도 일상으로 한 달 평균 38.6시간을 더 일했다. 한 주 40시간, 한 달 4주인 달력 속에 살면서 어린이집 교사들만은 5주를 일하고 있었다. 여태껏 어린이집 교사가 직접 작성한 보육실태 결과조차 없다. 원장이 싫어해서 실태조사를 못한다. 보건복지부마저도 원장들 입과 손을 빌려서 실태결과를 내고 있다. 그렇게 덮으려고 하는 것이 비단 어린이집 교사들 ‘근무시간’뿐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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