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은 촛불시민혁명 1주년 무렵 촛불의 위대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동시에 민주노총에 ‘화력’을 쏟았다. 

중앙일보는 2017년 10월29일자 사설에서 “민주노총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노정(勞政)대화에 불응하는가 하면 수감 중인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등 정의를 독점하고, 법치를 무시하는 등 안하무인식으로 설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민주노총을 비롯해 퇴진비상행동에 참여한 많은 단체가 사드 철수, 반미 투쟁, 사실상의 북핵 수용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과 아무 관계없는 이념선동 투쟁으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시기인 2017년 10월25일자 ‘文 대통령 노조 본질 직시하고 나라 위한 개혁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민주노총이 노동계 대표 초청 청와대 만찬에 불참한 것을 두고 “민노총이 이렇게 오만한 것은 ‘촛불 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노총은 현안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촛불 청구서’를 들이밀며 사회적 총파업과 청와대 앞 노숙 농성, 1박 2일 도심 시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 2017년 3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이치열 기자
▲ 2017년 3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이치열 기자
이 신문은 “문 대통령은 노조의 무한 이기주의 본질을 직시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노동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을 언급할 때 민주노총을 강조함으로써 민주노총에 반감을 갖고 있는 ‘촛불시민’을 갈라놓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박민 문화일보 부국장 겸 정치부장은 ‘나라다운 나라 헛구호였다’란 제목의 지난 10월31일자 칼럼에서 “촛불민심의 위대함은 대다수 국민이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애국심으로 시종일관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촛불민심은 특정 정파나 세력이 독점할 수 없는 국민적 가치”라고 주장했다. 보수진영이 촛불을 ‘자유민주주의’와 ‘애국심’의 단어로 ‘재정의’하는 대목이다.

박 부장은 이어 “촛불의 명령은 박근혜정부의 탄핵과 헌정중단 없는 민주적 대통령선거였다”고 정의한 뒤 “박 전 대통령은 3권 분립 정신을 무시했다.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며 “가장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5년 내내 계속하겠다는 ‘적폐청산’”이라고 강조했다. 촛불의 명령은 이미 이뤄냈으니 현 정부 적폐청산은 설득력이 없다는 식의 주장이다.

이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구호와 목표를 직선제 개헌으로 한정지으며 더 이상의 사회개혁논의를 가로막았던 과거 보수진영의 주장과 유사한 흐름이다. 심지어 박민 부장은 “촛불민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하면 1700만 개의 촛불이 1~2년 후에는 문재인 정부를 향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 2016년 11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모습. ⓒ이치열 기자
▲ 2016년 11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모습. ⓒ이치열 기자
이는 일종의 촛불에 대한 프레임 대결인데, 촛불을 부정하는 대신 촛불을 보수진영의 것으로 가져오기 위한 대응으로 비춰진다. 여기에는 ‘적폐청산=정치보복’ 프레임을 강화하며 정부의 개혁움직임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일례로 중앙일보는 지난 10월29일 ‘노조의 촛불, 진보단체의 촛불이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2년이 지나는 동안 (진보단체·노조는) 촛불정신을 멋대로 해석해 독점하려는 흐름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이나 민변 등의 주장을 촛불 민의로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과거 촛불을 들었으나 그제의 ‘촛불 2년’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은 지금 누구를 위한 촛불정신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년 전 촛불의제의 보수화’를 노리는 대목이다.

촛불의 보수화를 유도할 때마다 민주노총은 단골소재였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는 ‘지금 대한민국은 민노총 무법천지인가’란 제목의 지난 2일자 사설에서 “‘대한민국이 민노총 세상이 됐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 민노총이 요구해온 노동정책을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실행에 옮겼다”며 “촛불 시위를 주도한 민노총이 상전처럼 행세하고 정부는 민노총 눈치를 본다. 검찰·경찰·고용노동부 등 민노총 행패를 제어해야 할 국가기관은 사실상 민노총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보수언론의 움직임에 한겨레는 10월29일자 ‘촛불 2주년 의미 훼손하는 세력의 반동을 경계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근 촛불의 의미를 폄하하고 그 성과 위에 탄생한 문재인 정권을 맹비난함으로써 ‘촛불의 가치’를 지우려는 움직임이 노골화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모든 사회 운동엔 반동이 뒤따르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그렇긴 해도 아직 국정농단 주범의 사법적 단죄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들을 복권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한겨레는 “‘촛불’이 혁명인지 아닌지는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중요한 건 촛불집회에서 제기된 광범위한 사회 변화의 요구를 실천해 성과를 내는 것이다”라고 밝힌 뒤 “2년 전 촛불이 처음 출현해 들불처럼 번져나갈 시기에 진보뿐 아니라 보수 세력까지 폭넓게 공감했던 민주주의와 불평등 타파의 가치를 다시 돌아볼 때다”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맞서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을 통해 ‘촛불의 진보화’를 노리는 모습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0월29일자 사설에서 “적폐청산은 지지부진해 국정농단의 잔재를 다 걷어내지 못했다. 서민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는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있다. 전 세계를 감동시킨 ‘촛불혁명’의 성과로서는 너무나 초라하다”며 정부에 날을 세웠다.

경향신문은 “촛불집회는 단순히 정권 하나를 바꾸자는 게 아니었다. 촛불집회는 이 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없애고 반칙과 특권을 해소해 달라는 사회개혁 운동이었다”고 정의한 뒤 “하지만 2주년을 맞은 촛불혁명의 성과는 미흡하다. 민주주의는 표류하고 있고, 부의 대물림과 기회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일은 요원하다. 촛불집회의 성과라고는 남북관계 진전뿐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1년 전과도 다른 실망감이 촛불시민들을 엄습하고 있다. 촛불혁명의 가치가 완성되지 않는 한 촛불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진보·보수언론 할 것 없이 모두가 ‘촛불민심’을 거스를 경우 문재인정부가 위기를 겪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바야흐로 ‘촛불쟁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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