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를 탔다. 그런데 좌석 맨 앞에 있는 작은 TV에서 자신의 일상 사진이 등장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도망자처럼 묘사되어 보도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홍가혜씨는 그 기분을 4년 전 직접 경험했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 생각한 것을 방송사 인터뷰에서 그대로 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홍가혜씨는 투사가 아니다. 허언증 환자도 아니다. 그러나 언론은 그를 둘 중 하나로 만들었다. MB정부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은 대표 피해자가 미네르바였다면, 박근혜정부에선 홍가혜씨였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틀 뒤인 4월18일 오전 MBN과 인터뷰에서 “잠수부 중에 생존자와 대화를 한 사람이 있다”, “정부는 구조작업을 하려는 민간잠수부를 지원하는 대신 오히려 이를 막고, 대충 시간만 때우고 가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뒤 홍씨는 세상과 차단되어 유치장에 갇혔다.

스토리펀딩으로 탄생한 다큐멘터리 영화 ‘가혜’의 상영회가 지난 3일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은 지난 3년 간 꾸준히 홍씨를 추적했다. 홍씨는 울고, 웃고, 욕하며 지난 세월을 꺼냈다. 홍 씨는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총소리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으며, 경찰 수사 당시를 떠올릴 때는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홍씨는 핸드폰을 빼앗기고 유치장에 갇혀있을 때 자신을 사칭한 트위터 글이 올라오는 기이한 현실도 경험했다.

▲ 다큐멘터리 '가혜'의 한 장면.
▲ 다큐멘터리 '가혜'의 한 장면.
이후 홍씨는 CCTV가 24시간 돌아가는 목포교도소의 독방에 있었다. TV시청은 금지됐다. 그는 고립됐다. 홍씨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인권침해라는 걸 알게 됐다. 홍씨는 당시의 처참한 심경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씹어냈다. 이후는 무죄를 받기 위한 끝이 안 보이는 법정투쟁의 연속이었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을 때, 홍씨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2016년 9월1일 이윽고 항소심도 무죄를 받은 홍씨는 언론사를 상대로, 악플러를 상대로 법적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홍씨를 향한 성적 모욕이 많았다. 그러나 경찰은 홍씨 앞에서 악플을 읽으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잔인했다. 그럼에도 홍씨는 그림을 그리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살아내고 있다. 지난 4년간, 홍가혜씨는 다만 살고 싶었다. 가혜는,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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