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돈다고 한 갈릴레이의 주장은 종교재판에서 ‘가짜뉴스’로 판결 받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국회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 오픈넷,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이 같이 밝혔다. 한상희 교수는 당시 상황을 “종교적 진실과 수학적 진실의 충돌이었다”고 평가했다. 

허위정보 규제, 진실도 주저하게 만든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허위조작정보 규제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허위판단의 시간 의존적인 성격 △진실 표현도 억압할 가능성 △사전검열로 작용할 가능성 △의견과 사실 구분의 모호성 △의도 파악의 어려움 △언론과 비언론 차별 소지 △권력자를 위한 규제로 이용되는 점 등을 제시했다.

‘시간 의존적’이라는 말은 허위정보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은 “사회2부장을 지낼 때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재심을 받고 무죄가 되는 걸 봤다. 초동수사를 잘못하고 윽박질러 엉뚱한 자백을 받아내는 경우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당시 유서대필이 아니라는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운동권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으나 알고 보니 정부에서 ‘가짜뉴스’를 만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라는 주장, 최순실 게이트 역시 한때는 ‘가짜뉴스’취급을 받았다.

▲ 5일 국회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 오픈넷,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금준경 기자.
▲ 5일 국회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 오픈넷,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금준경 기자.

허위조작정보 규제가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주저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한상희 교수는 1983년 미국의 포르노잡지 허슬러에서 한 목사가 근친상간을 한 것처럼 묘사한 패러디 광고를 게재해 소송을 당한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도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에 작은 오류가 있을지 모르고, 다른 검증방법에 의해 거짓이 될 수도 있어 진실을 말하지 않는 냉각효과를 야기할 수 있기에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사전검열’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그는 “가짜뉴스 규제는 사후적 처벌로 보이지만, 행정권력이 먼저 내용상의 이유로 처벌을 위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전규제’와 같은 효과를 발휘해 사점검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는 허위조작정보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강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언론위원장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종북’이라고 지칭한 데 대해 재판부가 ‘의견’이라고 판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법무부는 ‘언론보도가 아닌 의도적인 허위조작정보’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강혁 위원장은 “의도성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주관적 내면의 문제다. 언론이 아닌 곳도 취재, 편집, 배포와 같은 언론 행위를 하기에 실정법상 언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다르게 규제하면 평등권 침해이자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 허위조작정보 정부 대응 문건. '정부 정책'에 대한 '가짜뉴스' 문제가 대책 마련의 계기가 됐다.
▲ 허위조작정보 정부 대응 문건. '정부 정책'에 대한 '가짜뉴스' 문제가 대책 마련의 계기가 됐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정부의 대응이 소수자와 약자가 아닌 정치적인 입장에서 나온 사실을 지적하며 “정부여당은 입장을 전할 수 있는 막강한 자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포털, 선관위, 방통심의위 대응 이미 과도해

한국의 표현물 규제는 이미 과도한 수준이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포털 임시조치 제도는 매우 강력하다”고 지적했다. 포털은 특정 게시글로 권리침해를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30일 동안 해당 게시글을 무조건 차단하고, 이의제기가 없으면 삭제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국내 양대 포털의 임시조치 건수는 네이버 164만3528건, 카카오 44만2330건에 달한다. 이정환 대표는 “임시조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뤄진다. 어린이 동화책의 가격을 여러 매장에서 비교해 최저 가격을 알려주는 글이 차단되거나 영화 예매 사이트에 불만을 털 어놓은 글이 삭제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대응을 지적했다. 천안함, 사드, 메르스 등과 관련한 통신상의 정보를 ‘사회질서 혼란’ ‘차별비하’ 등을 이유로 심의하고 일부를 삭제 조치했다. 황교안 대통령 대행 시절에는 풍자 목적의 패러디 뉴스까지 경찰에서 삭제 요청했다.

▲ 일부 내용이 보도와 다른 허위라는 이유로 지난 총선 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삭제된 게시글.
▲ 일부 내용이 보도와 다른 허위라는 이유로 지난 총선 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삭제된 게시글.

▲ MLB파크의 댓글. 지난 총선 기간 이 댓글은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 MLB파크의 댓글. 지난 총선 기간 이 댓글은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게시글 삭제 및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처벌도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크다. 선거기간 허위사실 유포로 삭제된 게시글은 20대 총선 때 2880건, 19대 대통령 선거 때 2만5111건에 달한다. 

손지원 변호사는 “BBK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한 정봉주 전 의원과 최태민, 최순실 부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착 의혹을 제기한 김해호 목사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로 처벌 받았다. 나경원 의원 자녀의 특혜 입학의혹설 게시글은 선관위 결정에 따라 삭제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을 허위조작정보의 잣대로 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손지원 변호사는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날 토론 참여자들은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우선, 인터넷 기업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준웅 교수는 “시민들이 나서서 저항하고 고발해야 한다. 자신의 지역구 의원들을 시켜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도 처음에는 오만했으나 청문회에 선 뒤로 태도가 바뀌었다. 의회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기에 그 자체가 엄청난 압박이 된다.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에 질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환 사장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의 대응도 주문했다.

한상희 교수는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차별의 법리로 접근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이 유의미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준웅 교수는 “소수자에 대한 억압적 의도가 있다면 가중처벌하는 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증오발언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발언을 가로막는 건 명백하게 반대한다”며 혐오차별표현 대응 역시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정보를 조작하고 퍼뜨리는 의도성을 가진 집단과 일반 이용자 간 디지털 활용능력 격차가 커진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며 “문제 해결도 디지털 정보 활용능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시티즌십’과 ‘시민사회 역량 강화’차원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조하고 이용주체의 권리와 의무, 역량 학습을 중심으로 한 이용자단체의 조직화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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