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은 아직까지 논쟁 중이다. 만일 당시 검찰의 인지수사를 통해 고소고발이 무자비하게 이뤄졌다면 민주주의 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5일 오후 국회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 오픈넷,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허위조작정보 규제 논의가 발언의 자유라는 힘을 통해 민주주의 타락의 위기를 극복한 민주정부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당혹스럽다”고 지적했다.

앞서 10월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주문했고 16일 법무부는 적극적 인지수사를 통해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하려다 반려된 ‘범정부 종합대책’에는 △임시조치 대상 및 통신심의상 불법정보에 허위조작정보 추가 △통신심의 강화 △자율규제 추진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강화 등이 담겼다.

▲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이준웅 교수는 정부의 허위조작정보 대응이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우선 ‘자율규제’와 ‘처벌’의 모순이다. 이준웅 교수는 “허위조작정보를 엄단하고 발본색원하겠다는 주장과 사업자 자율규제를 촉구하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높인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머리에서 나온 두 개의 팔다리가 아니라 두 머리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두 노선의 정책은 주체, 대상자, 방법, 예상효과가 상반된다.

현행법에 대한 판단에도 모순이 있다. 이준웅 교수는 “현행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주장과 현행법이 미비해 새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주장도 상반된다”고 했다. 법무부는 현행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금도 규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새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동시에 한다. 만일, 현행법이 무력하다는 인식 하에서 새 법을 만들 때까지 확대해 적용하자는 주장이라면 현행법 남용이라고 이준웅 교수는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 규제정책에도 모순이 발생한다. 이미 존재하는 포털의 이용자 삭제요청권을 강력하게 집행하겠다는 계획과 허위조작정보와 관련한 포털의 삭제 및 고발 권한 등을 만드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상존하고 있다.

물론, 허위조작정보와 표현의 자유는 구분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이와 관련 이준웅 교수는 “허위조작정보의 요지는 누가 판단을 하느냐에 있다. 이 판단이 정치적 동기가 있다면 당연히 야당은 반대하고 시민들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명백한 허위성이 확인되는 경우만 규제하면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과거의 명백한 허위성과 지금 벌어지는 내용이 동일하다는 걸 도대체 누가 판단하는가”라고 지적했다.

▲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이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iStock.
▲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이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iStock.

그는 또한 ‘허위성 판단’이 악명이 높다고 지적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과 관련한 그럴 듯한 문제제기가 무수히 많은데 수사결과에 따르면 약을 먹었다거나 굿을 했다는 건 허위다. 이런 걸 다 찾아 고발해야 하나. 천안함 폭침설은 어떻게 되나. 설이라는 것 자체가 자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가짜뉴스라는 현상에 주목하는 대신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이준웅 교수는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총리의 인식에는 동의는 한다. 브라질은 민주주의의 적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폴란드, 헝가리, 필리핀,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교란에 빠진 이유가 허위조작정보 때문인가. ”

그는 ‘다문화’ ‘경제위기’ 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현재 정부의 대응은 원인에 대응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규제다. 이런 규제를 할수록 아스팔트 우파들을 표현의 자유 투사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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