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대표이사 회장과 KT가 주주총회에서 반대파 주주들을 무시하고 진행하는 등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하고 주주권리를 침해한 불법을 저질렀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황창규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주장과 다른 견해를 가진 주주 단 1명에게만 발언권을 부여한 것도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203단독 김동현 판사는 지난 2일 엄장용씨 등 33명의 소액주주들이 KT의 주총 방해에 따른 손배배상을 청구하라며 낸 소송 1심 판결문에서 33명 원고 모두에게 100만원씩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김동현 판사가 인정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KT는 2018년 3월23일 09시 서울 서초구 태봉로 151 KT 연구개발센터 2층 강당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주주들에게 통보한 의안은 ‘제1호 : 제36기 재무제표 승인의 건’, ‘제2호 :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제3호 : 이사 선임의 건’, ‘제4호 :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제5호 :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이다. 주총 소집통지서에는 ‘원활한 행사진행을 위하여 진행요원 이외의 일반 주주들의 총회장 입장은 당일 오전 8시부터 허용됩니다’라고 기재돼 있었다.

엄씨 등 주주들(원고)이 주총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밤부터 주총장 입구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거나 또는 당일 아침 6시 경에 주총장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KT의 직원들은 당일 새벽 5시경부터 미리 배포된 비표를 소지하고 있던 주주와 직원 175명에 대해서는 출입을 허용하면서도 원고 주주들에겐 출입을 막았다. KT는 이들에게 8시가 돼서야 출입을 허용했다. 문제는 이들이 주총장에 들어가보니 비표 소지자들이 이미 주총장 앞부터 중간 정도까지 좌석을 다 차지한 바람에 원고들은 주총장 뒷부분에 앉거나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황창규 회장이 주총을 진행해 정해진 안건을 모두 의결하는 과정에서 원고들은 ‘불법정치자금 피의자 황창규 회장 즉각 퇴진’ 등의 현수막을 게시하거나 구호를 외친 반면, 비표 소지자들은 황 회장의 의사진행에 찬성하거나 지지‧환호했다. 황 회장은 주총 도중 자신의 뜻과 반대되고, 원고들의 입장과 같이하는 주주 1명에게 발언권을 줬다.

▲ KT 민주동지회 소속 회원과 KT 주주들이 지난 3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연구센터에서 열린 제36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뒤 임원 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KT 민주동지회 소속 회원과 KT 주주들이 지난 3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연구센터에서 열린 제36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뒤 임원 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김동현 판사는 “KT가 회사 입장을 옹호하는 주주들을 미리 선별해 공지된 시간보다 먼저 입장시킨 반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원고들은 공지된 시간에 입장시키는 방법으로 주총장 앞 좌석을 회사 입장에 우호적인 비표 소지자들이 점유하게 했고, 원고를 비롯한 반대파 주주들을 무시한 채 이들을 중심으로 주총을 진행해 정해진 안건을 모두 의결했다”고 해석했다.

김 판사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원고들의 주주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비표소지자들과 원고를 구분해 입장시킨 것을 두고 “회사가 자신의 경영방침에 동조하는 주주와 반대하는 주주를 미리 구분하여 좌석 배치에 차등을 둔 자체가 주주를 불평등하게 취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앞쪽 좌석에 위치할 경우 사회자의 주목을 받아 발언권을 얻기 쉽고 발언시 다른 참석자들에 대한 시각적인 전파력도 높아진다”며 “원고 주주들은 이러한 효과를 노리고 주총장 앞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와서 대기했는데, KT는 미리 예고되지 않은 편파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원고들의 노력을 무위로 만들어 버렸다”고 평가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KT는 자신들의 행위를 두고 “과거 주총에서 일부 주주들이 위험물질을 회의장에 던지거나 단상 점거를 시도하는 등 주총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돌발생황을 방지하기 위해 부득이 위와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김동현 판사는 그런 “원고들이 과거 주총장에서 이런 행위를 했다거나 이번 주총에서 이런 행위를 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그런 위험은 소지품 검사를 강화한다거나 의장과 주주석 사이에 경호인력을 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방지 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황 회장이 원고들에게 충분한 발언권을 주지 아니한채 비표 소지자들을 중심으로 회의를 진행해 안건을 통과시킨 행위를 두고 KT는 “원고들과 입장이 같은 주주 1인에게 발언권을 주었고, 원고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주총 안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동현 판사는 “주총 참석자들의 구성비율, 주총 진행시간 등에 비춰 원고측에게 부여한 발언권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으로 보이고 원고 주주들이 주장하고 있는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따른 황창규 퇴진’ 주장이 회사 자금운용에 관한 재무제표 승인이나 황창규가 추천한 사내이사 선임 안건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선험적 예단을 가지고 주주의 발언권을 제한하기 보다는 일단 발언권을 부여하고 나서 질서를 문란케 하는 경우에 한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 3월23일 오전 KT 제36기 정기 주주총회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연구센터에서 주총 참석자가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3월23일 오전 KT 제36기 정기 주주총회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연구센터에서 주총 참석자가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판결문을 보면, KT는 기관 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위임 등으로 인해 사실상 주총 전에 의결권 행사 방향이 확정돼 있을 뿐 아니라 원고 주주들이 주총 의안의 찬반 표결이 아니라 주총장에서 벌어진 충돌과 갈등 상황을 언론에 나오게 함으로써 ‘사회적 선전’을 위한 의도로 주총에 참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동현 판사는 “일부 수긍할 점은 있으나 주총 안건은 최종적으로 주총장에서 표결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고, 표결 전 엔 반드시 대화와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 결과를 좌우할 수 없다 해도 다른 주주들에게 직접 자신의 의견을 구두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원고 주주들이 KT 주장처럼 불순한 의도로 주총에 참석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KT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김동현 판사는 “KT가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원고들의 주주권을 침해함으로써 원고들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명백하다”며 “KT는 이를 금전적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김동현 판사는 주주의 권리에 대해서도 뚜렷한 정의를 판결문에 수록했다. 그는 “주주는 원칙적으로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 주주의 의결권은 주주가 자신의 의사표시를 통하여 주주총회라는 공동의 의사결정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로서 총회 참가권과 의견 진술권을 갖는다. 가장 중요한 공익권이자 주주의 고유권으로, 법률에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정관이나 주총 결의로도 이를 박탈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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