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 언론인 자말 카쇼끄지의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암살을 부인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진다. 이 가운데 지난 2일(현지시간) 예술인과 언론인, 운동가 100여명이 성명을 내 UN에 카쇼끄지의 죽음을 독립적으로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 지난달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그지. 사진=유튜브 갈무리
▲ 지난달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끄지. 사진=유튜브 갈무리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목표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펜아메리카(Pen America)는 이날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사우디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작가와 언론인, 인권 옹호자, 변호사들을 투옥했다. 저명한 언론인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행위로 사우디 비판자들을 향한 탄압을 심화하고 있다”이라며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밥 우드워드 기자와 작가 록산 게이·폴 오스터·이창래, 배우 메릴 스트립 등이 발신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일은 카쇼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갔다 사망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자, 유네스코가 정한 ‘국제 언론인 대상 범죄 척결의 날’이기도 했다.

카쇼끄지(59)는 지난달 2일 결혼을 앞두고 관련 서류를 가지러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뒤 실종됐다. 카쇼끄지는 사우디 국적 언론인으로 미국에 망명해 살고 있었다. 지난 9월부터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사우디는 “카쇼끄지가 방문 20분만에 영사관을 나선 뒤 실종됐다”며 살해 의혹을 부인해왔다. 사우디 총영사관 내부는 치외법권으로, 터키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다.

▲ 카쇼그지가 총영사관에 들어서는 모습이 터기 당국의 CCTV 영상에 찍혔다. 총영사관을 나서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 카쇼끄지가 총영사관에 들어서는 모습이 터키 당국의 CCTV 영상에 찍혔다. 총영사관을 나서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이후 사우디 발표를 놓고 의혹이 쏟아졌다. 총영사관 외부를 찍은 CCTV에서 카쇼끄지가 건물을 나서는 모습이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사우디는 내부 CCTV 녹화가 그날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17일 ‘카쇼끄지는 7분 만에 해부 전문가에 의해 토막 살해됐다. 이 전문가는 동료들에게 음악을 들으면서 하라고 조언했다’는 익명의 터키 정부 관계자 증언을 보도했다. 매체들은 미국 정보당국도 현장 녹음 내용을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일 CCTV에 찍힌 ‘암살조’ 15명 가운데 4명이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측근이라는 사실도 NYT 보도로 드러났다. 터키 고위공직자도 18일 포렌식 결과 카쇼끄지가 영사관 안에서 사망한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 위는 사건 당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주변 CCTV 영상. 뉴욕타임스는 영상에 찍힌 인물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이라고 보도했다(아래). 사진=유튜브 및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갈무리
▲ 위는 사건 당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주변 CCTV 영상. 뉴욕타임스는 영상에 찍힌 인물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이라고 보도했다(아래). 사진=유튜브 및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갈무리

사우디는 20일 카쇼끄지가 총영사관 안에서 용의자와 ‘주먹다짐’하다 사망했다고 말을 바꿨다. 암살 의혹은 지금까지도 부인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등은 사우디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일 워싱턴포스트에 낸 기고에서 카쇼끄지 암살 명령이 사우디 정부의 “최고위층”에서 내려왔다고 밝혔다.

카쇼끄지가 기고해온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프레드 라이언은 “이것은 설명이 아닌 은폐”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 문명 사회 지도자들은 사우디에 확실한 증거를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아그네스 칼라마르드 UN 즉결처형에 관한 보고관도 25일 뉴욕 UN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카쇼끄지의 죽음에 국제사회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CBS와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카쇼끄지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 “혹독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면서도 사우디와 무기 거래는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유튜브 갈무리
▲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유튜브 갈무리

자말 엘샤얄 알자지라 선임특파원은 미국 독립언론 ‘데모크라시 나우’와 인터뷰에서 그의 죽음은 사우디 정부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카쇼끄지는 정권 교체를 언급한 적이 없다. 그의 기고는 모두 개혁을 말했다. 사실 그는 왕조와 한때 친했던 사이”라며 “이는 무함마드 빈 살만 체제가 독립적인 내부 목소리조차 허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엘샤얄은 사우디의 카쇼끄지 암살이 “세계에 두 개의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꼴”이라고 했다. 그는 “사우디가 예멘의 학교버스와 어린이들을 폭격해도 (국제사회에선) 아무 반응이 없다. 카타르를 봉쇄해도, 레바논 총리를 납치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사우디는 현재 무슨 짓을 해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여긴다”고 경고했다.

언론인 보호위원회(CPJ)와 국경없는 기자회,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등은 지난 18일 터키가 UN에 독립적인 조사을 위한 개입을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우디는 올해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180개국 가운데 169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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