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허리띠로 때렸습니다. 뱀춤을 추겠다면서. 다른 직원에게 집어던진 물컵이 얼굴 앞으로 날아간 적도 있습니다.”

“소주병을 쥐고 저를 가격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한 달 전에는 제 목 앞쪽을 짓눌러 졸랐고요. 다른 반이 됐지만, 괴롭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희롱 피해를 참지 못해 인사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가해자 상사가 제가 혼자 있을 때 와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습니다. 다른 이는 사무용 커터칼로 찌르는 흉내를 냈습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과 잔혹행위를 담은 영상이 공개되면서 당국이 수사와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다. 그러나 직장 내 위계를 이용한 폭언과 엽기 갑질 사례는 사업장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폭언과 엽기 갑질은 처벌할 수 없다.

▲ 탐사보도 매체 셜록과 뉴스타파가 공개한 양진호 회장의 폭행·잔혹행위 영상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 탐사보도 매체 셜록과 뉴스타파가 공개한 양진호 회장의 폭행·잔혹행위 영상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한 달 동안 직장인들이 제보한 폭행과 폭언, 황당한 잡무지시 사례를 4일 공개했다. 한 달 동안 ‘양진호식 갑질’은 신원을 확인한 사례만 23건에 달했다. 

직장갑질119는 “‘양진호’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며 현재 계류 중인 ‘직장내괴롭힘 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물리적 폭력만 처벌한다. 폭언이나 엽기 갑질은 처벌할 수가 없다. 지난 4월 조현민 전 대한한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은 조 전무가 유리컵을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던지지 않아 특수폭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방해 혐의에도 조 전 전무가 대한항공 광고 업무와 관련해서 회의를 중단시켜서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직장갑질119는 “현행법으로는 폭언과 엽기행위를 당한 직장인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어도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어렵다. 폭언과 모욕을 견디다 못해 그만두면 ‘자발적 퇴사’가 돼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국외에선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정하고 제재 법률을 시행한 지 오래다. 프랑스는 2002년 비물리적인 직장 내 괴롭힘을 ‘심리적 괴롭힘’이라고 이름 붙였다. 노동법은 “모든 근로자는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정신 건강을 훼손하거나 △직업적 장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근로조건 저하를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낳는 △반복되는 정신적 괴롭힘의 행위들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에 조례를 마련했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행사해선 안 될 뿐 아니라, 노동자 간 괴롭힘을 용인하면 안 된다고 의무를 명시했다. 캐나다 퀘벡주도 2004년 노동법에 ‘정신적 괴롭힘’을 정의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중단시킬 의무를 사용자에게 지웠다.

▲ 지난 2일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를 법제사법위원회에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간사(왼쪽)와 자유한국당 임이자 간사.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2일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를 법제사법위원회에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간사(왼쪽)와 자유한국당 임이자 간사. 사진=민중의소리

현재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제재하는 법률안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9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3법’을 의결했다.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등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장제원․이완영 의원 등 일부 법사위 위원들이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사업장 내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일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환노위 여야 간사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를 촉구했다.

직장갑질119는 4일 보도자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해외 사례와 유사하게 규정하고 있어 불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과태료를 명시한 프랑스와 달리 처벌조항이 없는 반쪽짜리 법인데도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 통과를 막고 있다”며 “당장 ‘양진호 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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