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정부차원에서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추진단’이 꾸려졌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자 문화예술인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특히 이들은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분류되는 용호성 당시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이 현재 런던한국문화원장으로 영화제를 기획하는 등 여전히 문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해 국회와 정부가 블랙리스트 실행자 처벌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인들은 3일 오후 국회 정문 앞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 선언’에 이어 △블랙리스트 불법공모 131명 책임규명권고안 즉각 이행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책임규명이해 축소·왜곡·방해·셀프면책 책임자 문책 △대통령·정부·국회 차원의 구체적 대책 수립 △문화예술정책과 행정 등 민관협치에 대한 정부차원의 제도화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대행진은 국회 앞 회견을 시작으로 청와대까지 8.8km를 행진하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발언과 선언문 낭독 시간을 가진다. 동시에 청와대 측과 면담도 추진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블랙리스트’ 때문에 피해 입은 예술인들이 나와 발언했다.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를 담은 만화 ‘끈’을 그린 유승하 만화가는 “2015년 연재만화 제작지원사업에 총 174개 신청작 중 1차 심사를 통과한 77개 가운데 제 만화는 3등이었는데 갑자기 2차 심사에서 66등으로 밀려나 최종탈락이 됐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세월호를 주제로 한 만화여서 배제됐고, 저를 포함 제가 속한 ‘우리만화연대’가 블랙리스트였다”고 했다.

김서령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 회원은 “2015년 11월 공연할 ‘소월산천’은 국악그룹 앙상블시나위, 박근형 연출가가 이끄는 ‘골목길’과 협업 공연이었는데 갑자기 국립국악원이 ‘골목길’의 연극부분을 빼라고 했다”며 “2년 전 이맘쯤 무용인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넉달동안 몸짓으로 시위했는데 또 여기에 섰다”고 말했다.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 기자회견에서 김서령 희망연대 오롯 회원(왼쪽)과 유수정 만화가(오른쪽)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 기자회견에서 김서령 희망연대 오롯 회원(왼쪽)과 유승하 만화가(오른쪽)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당시 앙상블시나위는 공연 수정을 거절했고 국립국악원은 공연을 돌연 취소하라고 통보했다. 이 사건에서 박근형 연출가를 공연에서 배제하라고 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용호성 당시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이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블랙리스트 조사위)의 발표에 따르면 용호성 단장은 2014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 행정관 시절 영화 ‘변호인’의 파리 한국영화제 출품 배제도 지시했다. 

당시 용호성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은 현재 주영한국문화원 원장이고 11월1일부터 한달 간 진행되는 13회 런던한국영화제를 기획했다. 블랙리스트 실행자라고 알려진 사람이 여전히 문화예술 현장을 주도하는 것이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용호성 원장을 “당시에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던 자가 현재 영화제를 기획하고 있다”며 “이게 문재인 정부의 현실이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문화행정 개혁을 엄중 요구한다”고 말했다.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에서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제대로된 처벌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에서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제대로된 처벌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현린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이미 2013년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2013년 11월, 런던 한국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설국열차’와 ‘관상’이 갑자기 ‘도둑들’로 교체되고,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전시에서 임옥상, 이강우의 작품이 중도 탈락하고, 2014년 11월 CGV 등 대형 영화관이 ‘다이빙벨’ 상영을 거부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공연예술센터는 2015년 10월18일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연극 ‘이 아이’ 공연을 방해했고, 국립국악원은 퓨전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에게 무대를 함께 꾸미기로 한 연극연출가 박근형의 극단 ‘골목길’ 배제도 요구했다. 이때부터 문화예술인들은 ‘예술 검열’을 느꼈고 2016년 당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문화예술계 블랙이스트 명단 공개로 이어졌다.

현린 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책임규명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던 도종환 장관을 믿고 기다렸는데 결과는 처참했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구성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공동위원장 도종환, 신학철)가 지난 6월28일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관련 131명의 수사의뢰 및 징계 권고안을 발표했으나 7명을 수사의뢰하고 2명을 주의조처하는데 그쳤다. ‘주의’ 조처는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조차 아니라 “사실상 징계 0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예술인 2166명과 단체 131개가 참가한 이번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 선언’에서 이들은 “현재 블랙리스트 진상조사는 현저히 부족한 조사기간과 인력, 장관 자문회라는 권한 부족, 진상조사위 예산을 삭감한 국회의 방해와 기존 관료사회의 비협조로 최소한의 진상규명조차 이루지 못해 이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주관한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국회 각 정당과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 결과 중 일부로 오는 6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면담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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