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반발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유럽연합(EU) ‘부분 적정성 평가’가 1년 만에 퇴짜를 맞았다. 정부는 EU로부터 통보를 받고도 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최근 EU는 한국의 개인정보보호기구가 독립돼있지 않고 한국 정부가 요청한 평가 범위가 협소하다며 방통위가 추진해온 ‘부분 적정성 평가’가 아닌 ‘전체 적정성 평가’를 요청했다. 정부는 각 부처로부터 입장을 취합한 뒤 전체 적정성 평가 추진을 논의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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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방통위가 추진하는 ‘부분 적정성 평가’가 실효성이 없어 제도 정비 후 ‘전체 적정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방통위가 밀어붙였다.

적정성 평가는 EU가 다른 나라의 개인정보 보호수준이 자국과 동등한지 살피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 수준이 높은 EU는 외부로 개인정보를 옮기는 것을 금지하는데 제3국이라도 ‘적정성 평가’에서 인정 받으면 개인정보 이전과 활용을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유럽에 진출할 경우 개인정보를 수집할 권한이 없지만 ‘적정성 평가’를 통과하면 한국과 같은 방식으로 유럽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취급할 수 있다.

▲ 지난해 11월 한-EU 개인정보보호 협력을 위한 공동성명 발표 현장. 왼쪽이 유럽연합 사법총국 담당 베라 요로바 집행위원, 오른쪽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 지난해 11월 한-EU 개인정보보호 협력을 위한 공동성명 발표 현장. 왼쪽이 유럽연합 사법총국 담당 베라 요로바 집행위원, 오른쪽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적정성 평가 논란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부처 합동으로 전체적정성 평가를 추진했으나 한국의 개인정보보호위가 EU와 달리 실권을 가진 독립기구가 아니라서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전체적정성평가는 모든 개인정보 관련 법에 대한 적정성 평가를 말한다.

그러나 기구 간 해법이 엇갈렸다. 방통위는 여러 개인정보 관련 법 가운데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법규인 정보통신망법만 해당되는 부분적정성 평가를 지난해 추진하기 시작했다.

반면 개인정보보호위는 개인정보보호위 독립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히며 “방통위원장은 부분적정성 결정 추진을 중단할 것”을 골자로 하는 ‘권고’ 결정문을 지난해 12월 의결하며 갈등이 이어졌다.

개인정보보호위는 △부분적정성 평가를 할 경우 적용 기업이 많지 않아 효과가 크지 않고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우선 적용되는 일반법이고 정보통신망법은 특별법이라 정보통신망법만 우선 적용하는 평가 자체가 부적절하고 △전체적정성 평가의 선결조건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독립을 추진하지 않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반면 당시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은 미디어오늘에 △기업 활동을 위해 추진할 당위성이 있고 △개인정보 이슈가 온라인 중심이라 정보통신망법 우선 적용은 문제 없다고 밝혔다. 당시 방통위 이용자정책국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위의 반발이 “일방적 의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년 뒤 EU가 개인정보보호위 지적대로 ‘부분 적정성 평가’를 수용하지 않아 방통위의 오판이 드러났다. 개인정보보호위 독립을 추진하는 등 처음부터 부분적정성 평가가 아닌 전체적정성 평가를 준비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개인정보보호위원을 지냈던 이은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부분적정성 추진 자체가 무리했다”며 “온라인 부문만 한해 먼저 적정성 평가를 받겠다고 했으나 이는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거래상 은행 이슈의 경우 금융위원회 소관 신용보호법으로 옮겨져 결국 전체 적정성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방통위 이용자정책국 개인정보보호협력팀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이 다루는 대상의 범위가 좁다고 EU가 밝힌 게 맞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를 예측했냐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무리한 추진이었다는 지적에는 “무산이나 실패라기보다는 부분적정성에서 전체적정성으로 전환이 됐다는 의미라고 본다”며 “방통위는 나라를 위해 기업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부분적정성이라도 먼저 받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 방통위의 '부분 적정성 평가' 중단을 요구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문.
▲ 방통위의 '부분 적정성 평가' 중단을 요구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문.

방통위의 무리한 추진에는 개인정보보호기능을 둘러싼 방통위와 개인정보보호위 간 신경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개인정보보호기능을 이양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상황에서 ‘부분 적정성 평가’에서 성과를 내 개인정보 보호기능을 지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국회에서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인정보보호위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조사권을 부여하면 방통위의 권한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꼬집은 것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개인정보 규제완화 정책 탓에 앞으로 전체적정성 평가가 추진되더라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은우 변호사는 “적정성 평가는 결국 두 나라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비교하는 것으로 관건은 개인정보 및 개인정보의 활용 기준”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개인정보 정책을 보면 개인의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의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은우 변호사는 “최근 방한한 EU의회의 LIBE위원회(적정성 평가는 EU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관련 사안을 담당하는 위원회)측이 시민단체 면담에서 개인이 식별되지 않는 정보의 경우 연구 목적으로만 활용하게 하는데 한국 정부는 산업적 연구까지 넓혀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만일 이를 허용하면 통신사, 포털, 은행 등이 개인정보를 산업연구 명목으로 활용한다며 서로에게 건네주고 개개인을 프로파일링할 위험이 있어 적정성 평가를 받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개인정보를 개인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없다는 원칙의 예외로 가명정보에 한해 산업적 연구 목적의 활용을 허용하는 개인정보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가명정보끼리 결합하면 개인이 특정될 위험이 있고, 산업적 목적의 연구 활용의 위험성이 크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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