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은 신청자를 재심사할 때 국정원 방첩단장이 참여하는 현행법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법무부가 제주에 머무는 예멘 국적 난민신청자 가운데 지금까지 심사한 396명 모두를 불인정해 이의신청 절차를 남긴 가운데 나온 문제제기다.

법무부가 난민으로 불인정한 사람은 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이의신청할 수 있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도 여기에 속한다. 이 이의신청을 심의하는 곳은 법무부 산하 난민위원회다. 난민위원회는 6개월 안에 심의를 거쳐 난민 인정 여부를 다시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난민위원회는 위원장(법무부차관) 1명을 포함해 15명으로 꾸린다.

이 15명 안에 국가정보원 방첩단장이 들어간다. 법무부 훈령인 현행 난민위원회 운영세칙은 2조 2항에서 그 위원으로 국정원 방첩단장을 명시했다. 방첩단장을 보직으로 명시하는 위원회는 국내 행정기관 가운데 난민위원회가 유일하다.

이탁건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2일 “방첩단장을 난민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은 지나친 조치이며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UN난민기구와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 등이 함께 주최한 ‘대한민국 난민법의 현재와 미래’ 국제 학술토론회에서다.

 

▲ 이탁건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2일 ‘대한민국 난민법의 현재와 미래’ 국제 학술토론회에서 “방첩단장을 난민위원회(이의신청 심사 기관)에 포함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 이탁건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2일 ‘대한민국 난민법의 현재와 미래’ 국제 학술토론회에서 “방첩단장을 난민위원회(이의신청 심사 기관)에 포함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탁건 변호사는 방첩단장을 난민위원회에 포함하는 것이 이의 심사가 존재하는 이유와 어긋난다고 했다. 이의 심사는 1차심사에서 발생한 오류를 시정한다. 2001년 UN난민기구가 주관한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난민 인정심사 절차’는 “이의신청 심사기관이 1차 신청기관과 다르고 독립기관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탁건 변호사는 “방첩단장을 난민위원으로 두면 심사가 출입국 행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난민법은 이미 법무부장관이 이의신청에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고려하라고 규정한다. 난민협약도 같은 이유로 적법절차에 따라 난민을 추방할 길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난민위원회에 국가안보기관 당국자가 참여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국가안보 실무자가 난민신청자 이의심사에 관여하는 사례는 국제사회에도 찾기 어렵다. 이 변호사 “수많은 나라의 법제를 들여다봤지만 한국 외에는 다른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선진국 법제 안에서는 한 건도 없다”고 짚었다.

 

▲ UN난민기구·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법학전문대학원·아시아태평양법연구소는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근대법학100주년기념관 주산홀에서 ‘대한민국 난민법의 현재와 미래: 난민보호의 강화’ 주제로 국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 UN난민기구·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법학전문대학원·아시아태평양법연구소는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근대법학100주년기념관 주산홀에서 ‘대한민국 난민법의 현재와 미래: 난민보호의 강화’ 주제로 국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이의신청 제도가 1차 심사의 오류를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되풀이한다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현행 제도는 이의신청자가 법무부의 불인정 이유를 놓고 직접 해명할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의신청자가 직접 해명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 변호사는 “현재까지 전체 이의심사 사례 가운데 1명만 직접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고 파악한다”고 말했다.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지난해엔 회의 한 차례에서 757건을 결정하기도 했다. 전체 이의신청 건 가운데 20~30건만 보고 나머지는 아예 보지 않고 결정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황 변호사는 “이러한 제도는 난민신청자를 희망고문하면서 이의신청권을 박탈하고, 죄인으로 만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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