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의무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 14년만이다. 지난 2004년 7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 사건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 2일자 서울신문
▲ 2일자 서울신문

2일 아침 종합일간지는 일제히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소식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두고 “지금 평화가 온 듯하지만 실은 정규군만 120만명에 달하고 핵과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이 지척에서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나라가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언론은 대법원의 선고는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고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합리적 대체복무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2일자 아침 종합일간지에 실린 관련 기사 제목이다.

조선 : 대법 “종교적 병역거부 무죄”… 14년만에 뒤집다 (1면)

동아 :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자 감옥 안간다 (1면)
중앙 : 종교적 병역거부자 앞으론 감옥 안 간다 (1면)
경향 : 양심적 병역거부 ‘죄’를 벗다 (1면)
한겨레 :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70년 이어온 처벌 멈췄다 (1면)
한국 : 징병제 69년만에...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 첫 판결 (1면)
서울 : 대법원 “종교·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 (1면)
국민 : 거센 형평성 논란에도… 大法, 판례 14년 만에 뒤집었다 (2면)
세계 : “누구는 가고 싶어 가나요?”…‘병역거부 무죄’ 후폭풍 (1면)

조선일보는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조선은 2일자 10면 머리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vs ‘누군 양심이 없어 군대갔나’”라는 제목을 달고 찬반 여론이 엇갈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현 대법원과 2004년 대법원은 모두 종교적 병역 거부가 ‘소극적 양심 실현의 자유’에 따른 행동으로 봤지만, 과거 대법원은 이 ‘양심 실현의 자유’는 병역의무라는 또 다른 가치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70년의 징병제의 역사에서 대법원의 판단이 지난 2004년의 대법과 2018년의 대법이 어떤 쟁점을 갖고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보도하기보다는 ‘2004년 대법원과 현 대법원 vs 과거 대법원’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해석하면서 여론이 엇갈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판결 이후 여론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진보 성향 단체들은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병역거부자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와 네티즌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법원 판결은 무효’라는 내용의 청원이 160여 건 올라왔다”고 했다.

반면 한국일보는 2면 기사에 ‘대법원 판단 14년만에 어떻게 달라졌나’라는 제목의 표를 만들어 2004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떤 쟁점을 갖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쟁점을 △유·무죄 △ 입영이 불가능한 ‘정당한 사유’란 △양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 대체복무 도입과의 연관관계 △병역·징역 말고는 대안이 없나 등 크게 5가지로 나눴다.

▲ 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대법원 판단 14년만에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
▲ 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대법원 판단 14년만에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

한편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8면에 “병역거부 수감자 71명…‘사면·복권 이뤄져야’”, 6면에 “유죄 받은 병역거부자들 ‘특별사면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병역거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는 특별사면 가능성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아침 신문은 일제히 사설도 냈다.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을 “우리 사회 안보 사치와 ‘설마’ 병(病) 보여준 ‘병역 거부’ 판결”라고 뽑았다. 조선일보는 “대법원이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14년 만에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라며 “중대한 문제에 대한 법원 판단이 철마다 달라지는 유행 같다”고 주장했다.

▲ 2일자 조선일보 사설
▲ 2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지금 평화가 온 듯하지만 실은 정규군만 120만명에 달하고 핵과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이 지척에서 위협하고 있다. 우리처럼 엄중한 안보 상황에 있지 않은 나라라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도 존중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판결을 보면서 나라가 안보 사치에 빠져 국가 생존을 놓고 공론(空論)을 벌이고 있는 것만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는 “현역 복무하는 청년들 박탈감은 어떡할 건가”라는 사설 제목을 달고 “무엇보다 현역으로 복무하는 청년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심적 병역거부 인정은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절대다수가 특정 종파 소속 신도라는 게 문제다. 이 종파 소속 신도이기만 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체복무제를 허용할 것인지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국민일보를 뺀 다른 신문은 사설에서 “국회가 하루빨리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남북이 대치하는 안보 상황과 병역 특혜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헌법상 기본권이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은 과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떳떳하게 국가에 기여하고, 병역특혜 논란이 일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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