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다룬 보수언론 보도에 대해 “재계 입장 반영하려다 ILO 기본정신마저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0월29일 동아일보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낸 ILO 핵심협약 비준 반대 입장을 전하며 “ILO 회원국 187개국 중 8개 핵심협약 모두를 받아들인 나라는 143개국이지만 이들 상당수는 명목으로만 받아들인 제3세계 국가”라고 했다.(“노조권 강화땐 파업 남용… 대체인력 투입도 허용해야 균형” 기사)

▲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2017년 9월6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을 방문해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인사를 나누고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2017년 9월6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을 방문해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인사를 나누고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ILO 핵심협약은 권고안일 뿐 각국은 특수한 상황에 맞게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재계 측 말을 실었다.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가 비준을 추진하는 ILO 핵심협약이 ‘제3세계국이 명목상 받아들인 권고안 수준’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ILO 핵심협약은 총 8개다. △결사의 자유(87·98호) △강제노동금지(29·105호) △아동노동금지(138·182) △차별 금지(100·111호) 등이다. 한국은 강제노동·아동노동 금지 4개 협약만 비준했고 나머지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협약 비준을 공약해 추진하고 있다.

▲ 10월29일 동아일보 6면
▲ 10월29일 동아일보 6면

특히 OECD 가입 36개국 중 30개국이 핵심협약 모두를 비준했다. 이 30개국엔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포함됐다. 

가장 큰 문제는 ‘결사의 자유’ 협약 위상을 깎아내린 점이다. ILO는 핵심협약 8개 중에서도 결사의 자유 관련 2개 협약을 가장 우선시한다. 결사의 자유가 인권증진의 기본 수단이라서다. ILO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를 따로 두고, 비준 여부에 관계없이 가입국을 감시한다. 비준을 하지 않은 나라의 노사단체도 ‘결사 자유’ 위반만큼은 위원회를 이용해 ILO에 진정할 수 있다.

재계가 비준을 반대하는 이유도 ‘결사 자유 협약’에 있다. 한국이 협약을 비준하면 노조 가입을 제한하는 노조법·공무원법,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기회도 좁아진다. 당장 경찰·군인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과 화물기사·캐디 등 특수고용노동자 노조 설립이 가능해진다.

한국은 가입국 중에서도 노동자의 결사 자유를 보호하지 않는 대표 국가다. ILO 이사회는 지난 2년간 한국의 결사의 자유 위반 건에 대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 보고서를 연속 세차례 채택했다. 공무원 노조 설립 금지와 관련된 한국 ‘1865호 사건’은 1995년 접수돼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두번째로 오래 심의하는 사건이다.

▲ 10월31일 문화일보 칼럼
▲ 10월31일 문화일보 칼럼

동아일보는 핵심협약 위상을 잘못 평가했다. ILO는 국제기구로서 강제 수단이 없을 뿐이지 핵심협약을 의무적으로 지키게 한다. 한국 정부가 1996년 OECD 가입 당시나 한·미 FTA 및 한·EU FTA 체결 때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하고, 유럽의회가 2017년 한국 정부의 비준 촉구 결의문을 채택한 이유도 핵심협약이 국제기준이라서다.

동아일보는 핵심협약을 비준한 ILO 회원국의 76.5%인 143개국을 “상당수 명목상 비준한 제3세계국”이라고 교묘히 왜곡했다. ILO는 각 국가가 ‘명목상 비준’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협약 및 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 ‘기준적용위원회’ 등 상시 감독기구와 위반사항을 진정·제소할 특별 감독 절차를 둔다.

동아일보 보도 이래로 조선일보·문화일보 등 보수언론도 “ILO 협약 추가 비준은 위험하다”는 취지의 보도·기고글을 싣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ILO 협약 추가 비준 발상의 위험성’ 글을 기고하며 “한국은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도 그 어느 나라보다 노조를 강력히 보호하는 국가”라고 했다.

ILO 이사회 노동자그룹 교체위원인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재계 입장을 싣는다고 ILO 기본 정신까지 잘못 보도했다. 명백한 팩트 왜곡”이라며 “결사의 자유 보장을 가장 우선시하는 ILO 실정, 한국이 노조를 가장 심각히 탄압하는 국가로 분류된 실정의 맥락도 모조리 무시했다. 여론을 호도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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