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주사파’, ‘경기동부연합’ 등의 표현이 명예훼손이 아닌 의견표현에 불과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런 표현의 대상이 돼 소송했던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이자 같은 소송사건 당사자인 심재환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대표변호사)는 종북이나 주사파 표현이 어떻게 정치적 의견이 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대법관 김재형)는 지난 30일 변희재 전 주간미디어워치 대표와 조선일보 기자 등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원심(1심과 항소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전원합의체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김명수 대법원장,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조재연 대법관)인 다수의견은 파기환송을, 5명(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대법관)은 파기환송에 반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이 옳다는 의견을 냈다. 

변희재씨는 2012년 3월21~24일까지 트위터에 이정희 전 대표와 심재환 변호사를 두고 종북 주사파 경기동부연합이라 집중 비난했고 뉴데일리 조선일보 등도 비판보도해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손배소를 당했다. 1심과 2심에선 모두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변씨는 당시 트위터에서 “이정희와 심재환은 경기동부연합 그 자체”, “경기동부연합은 주사파”, “심재환은 경기동부연합의 브레인이자 이데올로그이며 (조직의) 성골쯤 되는 인물로서 6․25 남침론을 부정하는 ‘북한에 의한 무력남침 적화통일의 허구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주사파 경기동부연합의 입장”이라고 썼다.

대법원은 변씨의 트위터 글이나 조선일보 기사를 두고 “의견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 제시가 있는 의혹 제기에 불과해 불법행위가 되지 않거나 원고들이 공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위법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며 “이 표현행위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할 경우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특히 대법원은 ‘종북’이란 표현을 두고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국가‧반사회 세력’이라는 의미부터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대북정책이나 대북관계 변화, 시대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용어의 개념과 범위도 변한다. 사람들이 종북표현에 느끼는 감정 감수성도 가변적”이라고 평가했다.

주사파란 용어도 재판부는 2002년 12월24일 대법원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인정한 판결을 1994년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일 뿐 이후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전하고, 그동안 표현의 자유가 계속 확대돼 온 시대‧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주사파’라는 용어의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경선 과정을 둘러싸고 원고들이 취한 정치행보나 태도를 비판하는 수사학적 과장이라 볼 수 있다며 “따라서 이 또한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정희 전 대표와 심재환 변호사가 모두 공인이었거나 준하는 지위에 있어 재판부는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전 대표의 남편이자 원고인 심재환 변호사는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이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종북 주사파 낙인을 어떻게 단순 의견으로 볼 수 있느냐며 반박했다.

심 변호사는 “사실관계가 전혀 맞지 않다”며 “지난 2004년 민변에서 ‘인권의날’ 기념으로 인권 보고대회가 열렸는데, ‘국가보안법의 전제인 북한에 의한 무력남침·적화통일론의 허구성’이라는 제목의 긴 보고서 형식의 글을 썼다. 40쪽 짜리의 긴 글인데 거기에 6‧25 남침을 부정한 내용이 전혀 없다. 그 내용을 확인도 안하고 대법원이 그대로 인용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을 경기동부연합의 이데올로그 등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나는 경기동부연합 쪽과 아무 관련이 없다. (통진당) 내란음모 사건을 법률대리한 것은 있으나 경기동부의 조직원이거나 정치행보를 같이 한 적이 없다. ‘이데올로그’라는 건 정치적 선동가라는 뜻일텐데 황당한 얘기다. 이정희 대표도 당을 같이했을 뿐 경기동부연합과 조직적 관계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에 기초해서 판결했다것”고 지적했다.

심 변호사는 종북, 주사파, 경기동부연합 등의 용어를 의견 표명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우리 사회에서 종북 주사파라고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이 어떻게 단순 의견 표시가 될 수 있느냐, 아니다. ‘종북’이란 북한의 정책노선이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무뇌아적 정치적 행보를 하는 자들이며 혐오와 배제, 증오의 대상이 되는 표현이다. 이런 사실관계 적시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비판했다.

심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를 넓혀야 한다는 판결취지에 “그렇다 해도 정치적 의사표현이 혐오와 배제, 인격 무시와 모멸감을 주고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는 공격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종북 주사파로 낙인 찍히면 국가보안법에 의해 법적으로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대법원 다수 대법관들이 우리 부부를 친북행보를 하는 것 같다고 보고 똑같이 혐오와 배제를 하고,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말했다.

▲ 지난 2012년 4월11일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시 이정희(오른쪽)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남편 심재환 변호사가 관악구 서림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2012년 4월11일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시 이정희(오른쪽)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남편 심재환 변호사가 관악구 서림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심 변호사와 이 전 대표는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사실관계부터 조목조목 반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등 5명의 소수 대법관도 다수 대법관의 판결에 반대했다. 이들은 판결문에서 22차례에 걸친 변희재씨의 트위터글을 두고 “‘종북 주사파’ ‘주사파 경기동부연합’ ‘경기동부연합의 종북담론’ 등 위 3개의 단어들을 결합하여 사용하고, 특정 정당명과 관련자들 실명을 거론하는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적시했다”고 반박했다. 

소수 대법관들은 “대법원판결을 선고하는 현재는 (변씨 등이 글을 올린지) 6년, 원심 변론종결일부터도 4년이 지난 시점”이라며 “당시는 보수정권과 보수정당이 다수당을 점하던 상황에서 19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2012년 3월에 변씨가 트위터에 쓰고 보수성향 신문으로 평가되는 뉴데일리와 조선일보가 받아쓰며, 당시 여당의 당직자가 이를 받아 성명을 발표하는 형태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전 대표와 심 변호사가) 공인이나 준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하지만 당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에 비춰 볼 때 원고들은 소수자의 위치에 있었다”며 “변씨 등의 표현이 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통합진보당 득표 저지를 위한 의도로 이뤄진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분석했다.

당시를 두고 소수 대법관들은 “반공주의가 강고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던 소위 보수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 특정인이 ‘종북’, ‘주사파’로 낙인찍히게 될 경우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며 “다수의견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느끼는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너무도 무감각하다”고 반박했다.

▲ 지난 5월29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고문. 사진=김현정 PD
▲ 지난 5월29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고문. 사진=김현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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